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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위성지구국-세계로 우주로~!
작성자 최은혜 등록일 10.07.02 조회수 197
첨부파일

며칠 전 우리나라에서 12 번째 위성 천리안을 쏘아 올렸어요~

천리안은 우리나라 기술로 개발하여 만든 최초의 정지궤도 위성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특히 위성통신ㆍ기상관측ㆍ해양관측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최첨단 위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일곱 번째로 기상관측 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으니 지금보다 더 정확하고 신속한 일기예보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보은에는 위성통신지구국이 있어요 정식명칭은 [국제 통신 센트 금산위성지국 보은 분극] 이예요 지구국이라는 것은 위성과 통신시설을 중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예요


보은 지구국은 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馬老面) 적암리(赤岩里)에 있고 1983년 1월 착공, 1985년 1월 개통했어요 충청남도 금산에 있는 제1∼3지구국에 이어 네 번째 지구국이예요 10만 8900㎡(3만 3000평)의 부지에 높이 40m, 지름 32m의 초대형 카세그레인형(型) 안테나와 3,300㎡(1,000평) 규모의 건물로 되어 있어요


태평양 상공 3만 5800m에 떠 있는 통신위성 추적장치를 갖추고 있고, 모든 기능이 컴퓨터에 의해 조작된답니다 이의 개통으로 급증하는 일반통신은 물론, FAX 데이터 등 비음성통신(非音聲通信)과 국제 텔레비전 전송수요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지요  리나라 지구국은 모두 한국통신에서 관리하고 있답니다


태극전사들이 아쉽게 탈락한 남아공 월드컵도 인공위성을 통해서 위성중계되고 있는데요 위성중계는 통신위성이 증폭한 전파를 지구국이 받아서 방송국을 경유하여 각 가정의 텔레비전 수상기에 보내는 일을 말해요 수많은 데이터 정보가 국제적으로 위성중계 되어서 유통되고 있답니다

지구국이나 인공위성에 관한 더 재미있는 내용은

보은중 과학관 체험학습 Dsicovery center  ->탐구체험학습장->첨단과학체험

http://sci.boeun.ms.kr/index.jsp?SCODE=S0000000071&mnu=M002007002003

에 있답니다

그리고  인공위성이 왜 좋은지, 인공위성의 개발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우리나라 위성의 역사는 어떠한지 좋은 글을 발췌했어요~^^

첨부파일은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인공위성들을 종류별, 역사별로 설명해 놓은 글이랍니다~^^

재미있게 읽고 더 새롭고 더 멋진 우주의 꿈을 키워보세요


 

[인공위성의 역사]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은 1957년 10월 4일에 옛 소련 땅에서 발사된 스푸트니크 1호(Sputnik-1)다.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면서 인류의 우주 시대가 개막되었다.


1957년 10월 4일에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는 지름 58㎝에 무게 83.6㎏의 소형 위성이다./NASA

 

지름 58cm의 구 모양인 스푸트니크 1호의 무게는 84kg 정도였다. 구체에는 네 개의 안테나가 달려 있어서 96.2분 간격으로 전파 신호음을 지구로 송신하였다. 이 신호음은 송신기 배터리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23일간 계속되었다. 지구 상공에서 근지점 228km, 원지점 947km인 타원 궤도를 돌던 이 인공위성은 1958년 1월 4일, 발사한 지 석 달 만에 지구 대기권으로 떨어지며 불타버렸다. 그 동안 여행한 거리는 6천만km였다.

 

소련은 1호 성공의 기세를 몰아 불과 한 달 후인 1957년 11월 3일에 스푸트니크 2호(Sputnik-2)를 쏘아 올렸다. 이 인공위성 안에는 라이카라고 불리는 개가 타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었지만, 이 여행을 통해 라이카는 우주로 나간 최초의 지구 생물로 기록되었다. 라이카의 무덤이 되어 버린 스푸트니크 2호는 1958년 4월 4일에 불타 사라졌다.

 

스푸트니크는 러시아 말로 여행의 동반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 소식을 들은 미국은 이 인공위성을 동반자로 여길 처지가 아니었다. 인공위성 경쟁이 시작된 1950년대 말은 미소 간의 냉전이 한창일 때였다.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할 기회를 놓쳐버린 미국의 자존심은 있는 대로 구겨졌다.

 

게다가 이는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미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갖추었다는 것은, 소련이 언제든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음을 뜻했다. 미국은 군사적으로도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사실 미국도 이미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갖고 있었다. 1955년 9월에 미해군연구소가 뱅가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위성 개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적인 발사 소식을 들은 뱅가드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뱅가드 로켓 발사를 서둘렀다. 발사일은 1957년 12월 6일, 스푸트니크 1호 발사 후 두 달 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계획보다 서두른 게 문제였는지, 뱅가드 로켓은 발사 2초 만에 1m 정도 떠오르다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듬해 1월 25일에 발사된 두 번째의 뱅가드 로켓도 14초 만에 폭발하는 실패를 겪었다.

 

첫 번째 뱅가드 로켓이 실패한 후, 미국은 독일 출신의 로켓 과학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을 중심으로 익스플로러 프로젝트를 서둘렀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V2 로켓을 개발한 폰 브라운은 독일이 패전하기 직전 미국으로 망명한 과학자이다. 폰 브라운의 도움에 힘입어 미국은 1958년 1월 31일에 익스플로러 1호(Explorer-1) 발사에 성공하게 된다. 이것이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익스플로러 1호

 

익스플로러 1호는 지구 상공에서 근지점 354km, 원지점 2,515km의 타원궤도를 114.8분 주기로 돌았다. 이 위성은 길이 203cm, 지름 15.9cm의 길쭉한 로켓 모양이었으며, 무게는 14kg으로 스푸트니크 1호보다 훨씬 가벼웠다. 익스플로러 1호는 밴앨런대를 발견하는 성과도 올렸으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궤도를 선회하다가 1970년 3월 31일에 지구 대기에서 불타 사라졌다.

 


 

[우리나라 인공위성의 역사]

 

출처:한국항공우주연구원

 

 

[천리안 위성 관련 기사]

 

출처:한국경제(2010.06.27)

 

천리안위성은 발사 후 약 38분이 경과한 7시19분경 호주 동가라 지상국과 첫 교신했으며, 발사 후 정지궤도에 이르기 전전단계인 천이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위성의 상태 또한 별다른 문제없이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앞으로 궤도상 지상국과 24시간 연속 교신을 확보하기 위해 하와이 사우스포인트(South Point), 이탈리아 푸치노(Fucino), 칠레 산티아고(Santiago))을 활용해 차례로 교신을 시도할 계획이다. 또한 천리안 위성의 발사 초기운용을 위해 약 30명 내외의 한-프랑스 전문가그룹이 실시간으로 지상 네트워크와 위성 상태를 감시중이다.

 

출처:경향신문(2010.06.27)

 

 

천리안 위성은 발사 후 3시간 뒤에는 태양전지판을 부분전개 한 다음 약 8일 후에는 표류궤도에 진입한 후 태양전지판을 완전 전개하고 통신안테나를 전개하게 된다.

 

 출처:연합뉴스(2010.06.27)

 

 

한편 우리나라 첫 정지궤도 위성인 천리안 위성은 교육과학기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국토해양부, 기상청 등 4개 기관에서 3548억 8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 국가 우주개발사업 첫 작품으로, 향후 7년간 통신, 해양, 기상의 3가지 기능을 수행하며 실시간 기상관측한번도 주변 해양환경수산정보 관측, 차세대 위성방송 통신 서비스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자료출처: 충청일보(2010.06.27)


[출처]  ① http://blog.naver.com/bluebird5519     ②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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