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너머 통일로 - 분단과 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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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유성훈 | 등록일 | 13.05.02 | 조회수 | 97 |
통일문제는 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 입니다. 한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미·소의 한반도 분할점령으로 인해 양분되었다. 이후 북한의 도발에 의한 6·25전쟁으로 남북한 간에는 상호 증오심과 적개심이 깊어졌으며,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남북한 간의 심리적 분단도 고착화 되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동북아의 국제정치적 요충지가 되어왔고, 한반도의 통일문제에도 이들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깊게 얽혀 있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문제는 우리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적 문제라는 이중적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통일로 가는 길은 남북한 당사자의 노력과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한반도 통일 문제의 이중적 특성을 감안할 때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한 당사자 간의 노력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변국들을 설득하여야 한다. 주변국들은 한반도의 통일을 자국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할 것이다. 때문에 한반도 통일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은 역사적 당위성을 지니며 주변국들의 이익과도 부합할 수 있음을 대외적으로 설득해 나감으로써 우리의 통일 노력에 대한 이들 주변국의 지원과 협력을 확보하여야 한다. 분단은 왜 이루어졌는가? 통일을 이루려고 하면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논의하기 전에 현재의 남북분단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그 성격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남북 분단의 기원은 서구 열강의 세계분할지배와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식민통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여 치열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1945년 8월 15일 연합군 측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자 미국과 소련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였다.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분할된 한반도에서는 미·소간의 이념적 대립과 갈등이 표출되면서 분단이 시작되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미국·영국·소련이 한반도 신탁통치를 결의하자 자유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은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여부로 갈려 상호 대립하게 되었고, 미 ·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에 유엔이 활동 가능한 남쪽지역에서 총선거를 결의함에 따라 1948년 5월10일 남쪽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여 1948년8월15일 대한민국을 수립하였다. 1948년 12월 유엔은 대한민국정부를 한반도내의 유일합법정부로 승인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북한은 이미 중앙정부격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1946. 2)와 입법기관인 북조선인민회의(1947. 2)를 차례로 설치하고 헌법초안을 작성하는 등 독자정권 수립을 위한 제반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1948년9월9일 북한정권을 출범시켰다. 이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북한에 의해 자행되어, 휴전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은 38도선 전 지역에 걸쳐 기습적 남침을 감행하였다. 6·25 전쟁은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가져왔다. 또한 북한당국은 전쟁 시기 많은 민간인을 북한에 끌고 갔으며, 휴전협정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았다. 이는 민족구성원 상호간의 적대감을 심화시키는 심리적 분단으로 이어져 한 반도분단을 장기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분단은 남북한 갈등을 고조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대립적 위기 상황을 수시로 연출하였다. 분단은 대륙으로 통하는 통로를 단절함으로써 대륙과 해양의 연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발전기회를 박탈해왔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길목임에도 불구하고 분단으로 인해 대륙과의 육로 통행이 차단됨으로써 사회·문화·경제적발전이 저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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