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안타까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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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남윤서 | 등록일 | 10.08.30 | 조회수 | 19 |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38도선이 그어 진 뒤 남북 정부가 따로 섰다. 남북 정부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고, 38도선 양쪽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군이 38도선을 넘어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 그리고 두 달도 채 안 되어 낙동강 선까지 밀고 내려왔다. 하지만 9월에 UN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을 되찾고 38도선을 넘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한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북한지역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드디어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이 채결되었다. 하지만 휴전 협정이 채결 될 때 까지 한반도 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민간인 100만 명 이상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아군인 한국군은 13만 7899명이 전사했고 유엔군은 4만 670명이 전사하여 총 17만 8569명이 사망했다. 부상을 입은 한국군 45만 742명, 유엔군 10만 4280명으로 총 55만 5022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실종되거나 포로가 된 한국군 3만 2838명, 유엔군 9931명으로 총 4만 2769명이 실종 되거나 포로가 되었다. 적군인 북한군은 52만 명, 중공군 11만 6000명이 전사하여 총 63만 6000명이 전사했다. 부상을 입은 북한군 12만 명, 중공군 22만 명이 부상을 입어 총 34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마지막으로 실종되거나 포로가 된 북한군 12만 명, 중공군 2만 9000명으로 총14만 9000명이 실종되거나 포로가 되었다. 이로써 적군이 아군보다 피해를 많이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을 한다고 해서 이긴 나라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민간인과 군인 모두 사망자, 부상자도 많아 큰 피해를 입게되고, 폐허가 된 도시를 복구하려면 많은 노력과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전쟁 없는 세상이 되어 하루빨리 북한과 남한이 통일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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