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전고, 네덜란드에 헤이그 특사 파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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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전 | 등록일 | 20.01.03 | 조회수 | 90 |
[관련 기사 링크]: http://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922970.html
헤이그 특사 ‘만국평화회의 꿈’ 113년만에 후배들이 되짚는다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내정을 장악하려고 을사늑약(한일협상조약)을 맺었다. 고종은 세계에 일제의 만행을 알리려 애썼다. 특히 40여개 나라 대표 225명이 참석하는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기대를 걸었다. 고종은 이상설(전 의정부참찬)·이준(전 평리원검사)·이위종(주러한국공사관 참서관) 등 3명을 특사로 임명하고 “을사늑약은 대한제국의 뜻에 반하고 국제법(공법)을 따르지 않은 원천 무효” 등의 내용을 담은 밀서를 건넸다.
허원 서원대 교수(역사교육학)는 “이들 특사는 외국어는 물론 세계정세에 밝았다. 대표 격인 이상설 선생은 러시아 망명 상태라 일제의 눈을 피할 수 있었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통해 유럽으로 접근하기 쉬워 특사로 삼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 특사는 1907년 6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해 각국 대표 등을 통해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요청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국제기자클럽에서 ‘한국의 호소’를 발표하는 등 국제사회에 을사늑약의 부당함과 무효를 주장했다.
이상설 선생 등이 세운 민족교육 기관 ‘서전서숙’을 이은 충북 진천 서전고 김지담(19)·윤지수(18)·안세빈(17) 학생 등이 ‘헤이그 특사’로 오는 28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 등을 찾는다. 헤이그 특사 파견 113년 만이다. 김양은 “고종의 밀명을 받은 세 특사가 왜 헤이그에 갔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특사의 비장한 마음으로 샅샅이 살펴보고, 가슴에 담아와 많은 이들과 나누려 한다. 당시 특사들은 한국의 자주, 독립을 알리려 했지만 우리 특사단은 미래 한국의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하려 한다”고 했다.
이들은 113년 전 특사의 행적을 그대로 좇는다. 네덜란드 덴하흐역을 거쳐 특사들이 묵었던 데용 호텔(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는다.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왕궁 기사홀(네덜란드 국회의사당), 특사들이 지녔던 ‘공고사’(의견문)가 보관된 네덜란드 국립문서보관소 등을 둘러볼 참이다. 장외 언론활동을 했던 국제기자클럽을 찾고, 이준 열사 묘적지에 헌화·참배도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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