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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롤모델
작성자 유하은 등록일 10.08.16 조회수 39

   '무덤도, 초상화도 없는 프랑스의 성녀'(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의 잔 다르크 중)인 잔 다르크.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한 영웅, 마녀라는 죄목으로 화형을 당한 19세의 소녀인 잔느는 정말 대단한 분이다.

    이책은 위인전이 아니다. 세기의 재판이야기로서, 권장도서라서 처음엔 읽었으며, 책표지에 가시왕관이 있어서 읽었다. 그렇지만 이 책으로 인해서 내 인생의 롤 모델이 정해졌다.

    잔다르크, 당시 한  주교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시교회를 '아, 교회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도다. 교회가 탐욕과 방탕의 진흙 속에 뒹굴고 그 욕망이 지상에 넘치는 도다(책의 내용중)'라고 비판할 정도의 타락의 길을 걸어가던 교회가 있을 때, 마녀라는 죄목을 받았다.

    잔느는 활발하고 신앙심이 깊은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신의 계시를 받았고, 왕세자를 만나러 갔다. 왕세자와 그의 측근들은 잔느의 신통력을 시험하느라 엉뚱한 사람을 왕좌에 앉혀 놓았으나 잔느는 대신들 사이에 숨어 있는 왕세자를 정확히 찾아내 예를 갖추었으며, 모든 까다로운 심문을 걸쳐서 '의심할 바 없이 신의 사명을 부여받은 처녀'라고 푸에티에대학에서 왕세자에게 보고 드렸다.

     그 후 당시의 프랑스를 구했고, 왕세자를 샤를 7세로 등극하게 하였다.  그리고 전세를 뒤집어 승기를 잡은 만큼 즉시 파리로 진격하여 영국군을 완전히 몰아냐야 한다는 그녀의 전략은 없어졌다. 샤를 7세가 부르고뉴 공작과의 협상에 목을 매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잔느는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왕과 그 측근들을 따라다니며 포로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왕실고문관들의 명령으로 잔느는 소규모의 병력을 거느리고 부르고뉴파가 점령하고 있던 생피에르르무치에르를 점령하고 라샤리테쉬르루아르를 극히 제한된 물자와 병력만을 내주어 도중에 포위에 성공하고도 도중에 탄약이 떨어져 철수 했야만 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여자가 그런 일을 행한것에대해 두려웠던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라를 구한 사람한테 정말 국와이고 그의 측근들이고 간에 정말 너무 한것 같다. 그리고 트레무유라는 사람, 진짜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라샤리테쉬르루라르성 공격을 개인적인 원한으로 잔느에게 시켰으면 제대로 하란 말이다. 그리고 농간으로 "신은 소녀를 저버렸다"로 까지 하고, 정말 잔느는 어떻게 그런 사람과 같이 있을수 있던 것일까? 

   그러던 어느날 잔다르크는 부르고뉴 공작이 오랫동안 국와편을 들어왔던 콩피에뉴를 공격하자 콩피에뉴를 원조하기 위해 출정해였다. 그렇지만 자신의 동생, 몇 명의 시종, 무장병사만 그녀를 따랐다. 그리고 영국군 등원부애데 포위되어 모두 포로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샤를7세는 잔다르크의 몸 값을 지불하지 않아 잔느는 풀려나지 못했다.  그렇다 프랑스 왕실은 잔을 구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코숑 주교는 1만 리브르를 지불하고 잔느를 넘겨 받았고, 루앙으로 이감했다. 그리고 쇠구슬이 달린 사슬로 손발을 묶고 다섯명의 경비병이 방안에서 기거하며 밤낮으로 그녀를 감시 했다. 경비병들은 그녀를 희롱하거나 심지어 강간하려고 하였다. 또한 교회재판인니만큼 교회감옥으로 옮겨달라는 그녀의 정당한 요구는 묵살 되었다. 중요한 전쟁포로었는데도 대우는 일반 범죄자와 다르지 않았으며, 주교는 관할구역 안의 사건만 재판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코숑이 관할범의를 벗어난 루앙에서 재판을 주도 했다. 즉 이름만 교회재판이지 정치적 재판이였다는 것이다.

   재판이 이루어 졌다. 첫날 재판에서 코숑은 잔느에게 주기도문을 외워 보라고 했다. 그는 잔느가 신의 계시를 맏기에는 너무나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줄 요량이었다. 그러나 잔느는 "당신이 나의 주기도문을 들을 만큼 돈독한 기독교 신자임을 먼저 신앙고백하라"라고 했다. 또한 침착한 그녀의 대꾸에 흥분한 재판관, 학자들 등의 사람들에게 한 번에 한 분씩 질문하라고 까지 했다.

    신문관들은 함정이 도사린 까다로운 질문들을 쏟아냈고, 잔느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 이 주제, 저 주제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질문의 내용은 엄청 광법의 했으나 잔느는 함정이 도사린 질문에서 심문관들의 의표를 날카롭게 찔렀고, 또한 말하지 않겠다고 한 질문은 "통과", "재판과 무관하다."등의 대답으로 받아넘겼다. 연일 너무 많은 질문으로 심문관들이 예전에 했던 질문을 반복하면 잔은 그건 언제 어느때 답변한 문제는 기록을 살려보라고 충고 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잔이 왜 화형을 당했을까?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정말로 궁금했다. 이런 처녀가 어떻게 유죄 판결을 받았는지.

   5월 24일  판결이 낭독될 생투앙 교회묘지로 호송되었다. 그녀는 잔과 샤를7세를 격력히 비난하는 신학자에게"당신은 선한 그리스도 교인인 샤를 국왕을 비난할 자격이 없으며 내 언행에 잘못이 있드면 그 책임을 오직 나에게 있다"며 그 설교를 중지 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한 모든 말과 행동에 해단 증거를 로마의 있는 교황에게 보내달라고 요구 했다. 이단혐의를 받은 피고인은 로마에 항소할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였는데, 재판관들을 이 권리를 무시했다. 그리고 참석한 신학자와 심문관들과 운집한 영국인 구경꾼들의 그 험악해진 분위기의 광기에 잔느는 "재판관과 교회릐 처분에 따르겠다" 는 내용의 서명했다. 잡단적 광기에 잔은 자신의 통제력을 잃게 된 것이다.

   잔느는 김 검정옥을 입고 사형집행인의 수레에 올려졌다. 이단, 타락자, 배교자, 우상숭배자라고 쓰여진 뾰족한 모자가 그녀의 빡빡 깎인 머리에 씌워졌다. 그리고 화형주에 섰다. 거기서 마지막 석교를 들어야 했다. 잔느는 무릎을 꿇고 자신을 비난 모든 사람을 용서하였듯이 용서받기를 바라며 기도하기 시작 하였다. 그때 그녀를 괴롭혔던 교회 인사들도 눈물을 흘렸으며 그녀의 친구로 위장한 사람들은 감정이 북받쳐 그곳을 떠났다. 잔느는 십자가를 원했고 감옥에서 화형장까지 대동했던 수도사가 누무막대 두개를 묶어 십자가를 주었다. 잔느는 몇번이나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꼭 껴안았다.

    화염이 그녈 감싸자 불길 속에서 "주님, 주님"이라고 하는 잔느의 목소리가 들여 왔다. 그리고 세느강에 뿌려졌다.

   후 샤를 7세의 왕권과 위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대체 무슨 근거로 잔늘 그렇게 잔혹한 형벌에 처하도록 했는지 조사를 했고, 1456년 7월 잔 다르크의 주술과 이단혐의를 벗었다.

    정말 주님앞에 올곧게 선 잔느의 삶, 자기자신의 진리를 지키면서, 함정이 도사린 제판장에서 제판관들과 심문관들을 당황하게한 소녀. 초상화도 없고, 무덤도 없지만 잔느는 영원한 영웅이고 성녀다. 나도 그분같은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오! 잔이여! 그대를 기억할 무덤도 초상화도 없지만 영웅의 진정한 기념비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음을 알았던 이여!-앙드레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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