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을 읽고 |
|||||
---|---|---|---|---|---|
작성자 | 유동은 | 등록일 | 10.08.13 | 조회수 | 30 |
나는 오늘 조선왕조실록 세종·문종 실록중 우리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 실록을 읽는중이다. 세종대왕님의 아버지 태종대왕은 큰아들양녕대군을 폐하시고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으셨는데 갑작스럽게보위에 오른 스물두살의 젊은 임금 세종은 두려웠다. 준비없이 나라를 맡게되어서가 아니라 상왕으로 물러 앉은 아버지 태종대왕의 의도를 알 수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난세를 헤쳐 오며 당대의 영웅들을 모두 제압하고 마침내보위에 올라 신생 조선을 반석위에 올려놓으신 태종대왕. 노련한 정치기술과강력한 카리스마로 젊은 대간들을 물론 노대신들까지 쥐락펴락하는 태종대왕인데 대왕이 아니신가?그렇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지존의 지위를 구축해 놓고 왜 물러나시는 것인지 청년왕 세종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고민스럽긴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개국이래 세 임금이 모두 상왕이 되었기때문이다. 본래 군왕이란 눈을 감는 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임기를 다하는법인데 세명의 왕 모두 생전에 보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다. 그런데 태조대왕과 공정왕(정종)께서는 사실상 쫓겨나 신것이다. 때문에 두분에게는 이름만상왕이지 실상 아무런 권력도 없었다. 그런데 태종대왕께서는 스스로 물러나신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종대왕께서는 상당한 권력을 갖게 되어서 이중권력이 형성 되었다. 그런데 상왕(태종대왕)께서는 물러날때"내 비록 물러나지만 주상이서른살이 될 때 까지는 군사와 관련한 일은 내가 직접 챙길것이고, 그 밖에도나라의 중요한 의논에는 참여하여 주상을 도울 것이오"라고 하셨다. 그러니까병조는 주상전이 아닌 상왕전에 보고를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있었다. 이때의 병조 판서는 박습, 병조참판은 강상인이었는데 강상인이 실세였다. 병조 일을 오래 해온데다가 태종을 대군 시절부터 따라다니며 모신, 말하자면 태종의 가신이다. 그래서 박습이 거의 강상인이 뜻을 따른것이다. 그런데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강상인은 태종을 제쳐놓고 세종에게 보고하고는 하였다.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날에 태종이 강상인을 불러"요사이 새로 만든 상아패와오매패는 무엇에 쓰는 게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강상인이 "이건 대신을부르는데 쓰는 것이옵니다."라고하였다. 그랬더니 태종은 "그래? 그럼 내게는 필요 없는물건이구나 주상전에 갖다 드리거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강상인이 세종께 가져다 드렸더니 세종대왕님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그랬더니 강상인은"이것은 밖에 나가 있는 장수를 부를 때 쓰는 것이옵니다."라고 대답하였더니 세종대왕은 "그럼 여기에 둘 수 없는 물건이군요. 상왕전에 갇다드리도록 하세요"라고 하였다. 그때 강상인은 아뿔싸! 하며 상왕전에 다시 가져갔다.그랬더니 태종대왕께 서는 "군사와 관련한 일은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분명히일렀거늘, 여봐라! 의금부를 부르라! 강상인을 당장 하옥하고 고문을 가해서라도 그놈과 더불어 의논한 자들을 낱낱이 밝히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그렇게 되서세종이 왕위를 불려받은 지 불과 보름만의 일로, 상왕인 태종의 힘을 새삼일깨워 준 사건이다. 조사가 끝나 강상인은 함길도에 관노로 보내지고 박습은경상도로 유배되었다.나는 여기까지의 일을 읽고 태종대왕님이 너무 무섭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확실히 상왕에게 거짓말을 하였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말이다. 만약 내가 그시대에 살았다면 어떻게하였을까? |
이전글 | 수련회 전날 |
---|---|
다음글 | 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