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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아 연주회
작성자 박예지 등록일 11.11.16 조회수 25

 

 어제 야자시간에는 김천으로 연주회를 보러갔다. 그 연주회는 바로 '이 희 아의 연주회'였다. 처음은 그냥 말만 들어도 신기했다. 텔레비전이나 책에서만 읽었던 주인공이 내 눈 앞에서 연주를 한다니. 나는 ‘정말 이 기회를 영광으로 생각 해야겠다’ 고 하며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선생님 차를 타고 김천 문화예술회관으로 갔다.

 문화예술 회관의 건물부터가 정말 낭만적이었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은은한 갈색 빛들. 어쩌면 오늘의 연주회를 더 멋지게 장식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추웠지만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입구를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표를 받고, 화장실을 왔다갔다 거리며 기다렸다.

 그리고 한 몇 분 있다가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 희 아 언니가 나왔다.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보통 사람의 몸의 반 만 한 어쩌면 피아니스트계의 작은 거인이 들어오고 있었다. 표정도 밝아보였다. '피아노 의자에 어떻게 앉나.' 했었다. '누가 도움을 주나?' 라고 기다렸는데 아무도 나오는 이 없었고, 희 아 언니는 혼자 스스로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인사를 했다. 이어서 바로, 피아노 연주를 했다. 쇼팽 곡이었다. 열 손가락을 모두 가진 사람도 그런 곡들을 완성해 연주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텐데 희 아 언니는 열 손가락을 가진 사람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주셨다. 갑자기 어렸을 때 집에 있었던, 나의 심심함을 달래주었던 피아노가 그리워졌다.

 몇 곡을 들은 다음, 희 아 언니 어머니가 나오셔서 희 아 언니가 어떻게 태어났었고, 또 힘든 과정을 다 이겨가면서 희 아 언니를 지금까지 잘 버텨오게 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내 딸이 장애가 있는 아이였고 아무리 신앙의 도움을 빌린다하더라도 주머니에서 나오는 손이 튤립 같았고, 얼굴이 보름달처럼 예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나에게만 왜 이런 시련이 닥친 걸까.'하고 좌절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희 아 언니 어머니는 그런 딸이 정말 예뻐 보였고, 희 아 언니 어머니는 희 아 언니가 지능이 낮게 나왔어도 혼내지 않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주신 분이었다. 정말 희 아 언니 어머니도 대단하셨지만, 그냥 '어머니'라는 그 자체가 참 대단한 것이 구나 라고 느꼈었다. 또,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도 희 아 언니보다는 가진 게 많으니까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그런 마음 뜨끔거리게 하는 말을 남겨두고 가셨다.

 그렇게 1부가 끝나고 15분간의 휴식시간을 가졌었다. 뒤에서 한 친구는 울다가 웃다가 그랬단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는 사지가 멀쩡한데도 불구하고 잘하는 게 없는 거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분명 그 친구도 장점은 많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그러셨다. 이곳은 자기 자신을 비하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저렇게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과 맞먹을 정도의, 아니면 보통 사람들 보다 더 나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그 숨겨진 노력들과 눈물, 반성들이 밑거름이 되어주었다는 것. 그런 것을 알고 나 자신을 한번 반성해보는 것이 이 연주회에 온 것이 아닐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2부가 시작되었고, 희 아 언니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잘 불렀다, 못 불렀다 로 결정하기 보단, 그냥 멋졌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저 가창력과 여유로운 쇼맨십. 그리고 당당함. 닮고 싶은 면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음을, 노력을 하고, 당당하게 살자는 그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로 했다.

 고등학교 시험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또 내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그리고 내 귀가 편안해질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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