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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혼자서는 변할 수 없다.
작성자 박성은 등록일 11.04.08 조회수 21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노릇을 해야 하는 비만아의 괴로움은 크다. 은경이는 체육 시간이 싫다. 소풍 갈 때는 더 싫다. 체육 시간마다 옷을 갈아입는 것은 참 고역이다. 흘끔거리며 킹 사이즈 속옷을 훔쳐 보는 친구들의 시선에는 따돌림의 이미가 담겨 있다. 소풍 갈 때 벌이는 화려한 패션 파티(?)는 아이들에게 단 하루의 즐거운 일탈감을 충족시켜 주지만 은경이에게는 최악의 고통을 안겨 준다. 지난해 소풍에서는 ;아줌마 몸빼'를 입었느냐는 놀림에 급우들뿐 아니라 담임선생님도 배를 잡고 웃었다. 안 그래도 남의 시선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사춘기에 이목을 끌어당기는 비만은 은경이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원수다.

은경이의 부모는 중학교 2학년 사라으러운 나이에 비만 공포증에 시달리는 딸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은경이의 학교생활은 점점 황폐해져 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살이 찌기 시작해 고민에 빠졌고, 그 때문에 성격도 변해 갔다. 외골수에 변덕이 심해지고, 자학과 신경질이 늘었다. 늘 이곳저곳 쑤시고 아프다며 호소하는가 하면 체육 시간에는 아예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운동장 수업을 기피하여 체육 선생님의 분노를 샀다. 결석과 지각이 잦고 툭하면 조퇴를 신청하다 보니 담임에게도 진작부터 찍혔다. 집에서는 공부 잘하는 날씬한 언니와 자주 다투었다. 언니와의 싸움이 불거질 때마다 아빠는 신경질을 내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리고, 아빠에게 질책을 받은 엄마는 결국 은경이를 나무라고, 은경이는 더 화가 나서 '먹는 것'으로 분을 삭히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은경이의 피해의식과 자기 방어 콤플렉스는 이제 타인에 대한 분노를 넘어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자학으로 옮겨 갈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는 은경이에게 여러 가지 상담 치료를 권했다. 전문가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정신신경과에 데려가 치료도 받고,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등록도 했다. 그러나 은경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은경이의 비만은 오랜 내력을 갖고 있었다. 생리적인 원인게 기인하기 때문에 의학적인 치료를 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유한 부모님을 만나 과잉보호를 받으며 불규칙적으로 군것질하는 습관을 들인 것도 비만에 한몫했던 것이다. 문제는 은경이의 생활주기였다. 생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은경이의 비만을 고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은경이의 엄마는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며칠에 걸쳐 가족회의를 하고 서로에 대한 불신을 확인하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은경이의 비만은 은경이 혼자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두 함께 동참하여 고치자고 다짐했다.

먼저 가족들은 냉장고에 있는 기름진 음식을 치웠다. 아이스크림과 수입과자와 저녘 식사 후 먹는 부드러운 디저트 케이크와 과일에 이르기까지 다이어트에 방해가 되는 음식은 일체 보관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은경이에게만 다이어트를 권했던 것이 어느새 모두가 은경이와 함께 다이어트의 고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어서 가족들은 하루에 한번씩 은경이를 칭찬하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신을 위해 꾸며 낸 칭찬인 것을 알고 짜증을 냈지만 매일 지극 정성으로 함께 굶고 칭찬해 주는 가족애에 은경이는 차츰 감동을 느꼈다. 은경이의 치유를 두고 은경이 혼자만 생활양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의 생활주기가 변한 것이다.

은경이의 비만은 신속하게 고쳐지지 않았지만 비만 때문에 주눅들고 슬퍼하던 마음의 병은 많이 사라졌다. 은경이는 더 이상 친구들에게 짜증을 부리지 않았고, 체육 시간을 빼먹지도 않았다. 도와주고 신경 써 주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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