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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素月)이 밝으니 세상만사가 밝구나.
작성자 박예슬 등록일 12.04.17 조회수 19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를 좋아한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김소월이고,가장 좋아하는 시도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 임을 보내는 한 여인의 마음이 여성스럽게 잘 드러났고,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한국 가수인 마야가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기 때문에 난 이 시를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이렇게 여성스러운 시를 쓴 김소월이 여자가 아닌 남자라니..난 작년까지만 해도 김소월이 여자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본명이 김정식(金廷湜)인 남자 였다. 김소월의 사진을 보면 누가 봐도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소월 시인을 소개하자면 그는 1902년 8월 6일에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태어났고,1934년 12월 24일 음독 자살로 별세하셨다. 김소월은 남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오산학교에서 조만식과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을 만났다. 김억의 격려를 받아 1920년 동인지<창조>5호에 처음 시를 발표했다. 오산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1925년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이고,김소월의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발간되었다. 그 후 김소월은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들이 실패하자 본래 예민했던 그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친척들로부터도 천시를 당했다. 그리고 1934년 12월 24일 곽산에서 아편이라는 마약과다복용으로 음독 자살하였다. 난 백과사전에서 김소월의 생애를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가 사후 43년 만인 1977년 그의 시작 노트가 발견되었는데,여기에 실린 시들 중 스승 김억의 시로 이미 발표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스승이 제자의 시를 자신의 시로 둔갑했던 것이었다! 나는 김소월이 그동안 믿고 따랐던 스승이 배신을 하여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한편으로는 김억이라는 사람이 매우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 문예창작에서 감상문을 쓰는 것을 계기로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쓴 김소월이 수 많은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난 앞으로 계속 김소월의 시를 즐겨 읽을 것이며,마음의 상처를 참지 못하고 끝내 목숨을 끊어 버린 김소월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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