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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체험학습
작성자 남정미 등록일 13.07.01 조회수 13

통일현장체험학습보고서

3학년 1반 남정미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해서 서울에 있는 용산 전쟁박물관과 현충원을 다녀왔다.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 6.25전쟁만 없었다면 우리는 통일에 이렇게 목매일 필요도 그리고 국방비를 낭비할 필요도 없었다. 4Km를 두고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이렇게 60년을 살아왔다. 처음 들린 곳은 용산 전쟁 기념관이다. 우리나라의 아픔 역사들이 한 번에 담겨져 있는 곳이다. 일 학년 때 와보고 두 번째로 와보는 곳이라 익숙했다. 이번에는 사유리 선생님도 함께 오셨다. 선생님과 함께 사진도 찍고 그리고 많은 비석들 중에서 선생님의 나라사람들이 우리나라 6.25 전쟁에 참여해서 새겨진 비석들도 함께 보고 신기해했다. 우리나라는 너무 많은 끝도 없는 비석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 다 전사하신 분들이다. 끝도 없는 비석들이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싸움을 그리고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외국인들이 죽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비석들 사이에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다. 얼굴한번 보지는 못한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 와서 목숨을 걸고 싸운 분들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글은 보는데 무언가 되게 어딘가 깊숙이 무언가를 찌르는 기분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그리고 이런 알 수 없는 땅에 와서 영문도 모른 체 전쟁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우리나라 분들에게도 감사하지만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고 가신 외국인 분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느꼈다. 비석들을 다 보고 밖에서 공연을 하던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중위나 대위들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호국의 별의 방에 들어갔다. 엄청 엄숙하고 무언가 되기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호국의 별 의 방은 나라를 지켜낸 수많은 호국영령들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영웅들이 호국의 별이 되어 영원히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방이다. 한마디로 추모를 하는 방이다. 들어갔을 때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여러 개의 촛불이 켜있고 그 안으로 더 들어가면 “창조”라는 도형물이 있었다. 엄청 큰 항아리 같은 곳에서 물이 흐르고 위에서는 한줄기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 조형물은 대양광선이 한반도를 의미하는 반구 중앙의 샘솟는 물과 만나 창조를 표헌, 민족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조형물의 뜻이 담겨져 있다. 거기서 나와 이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계단에는 그 유명한 이순신의 학익진 전법에 쓰였던 우리나라의 배 거북선이 있었다. 그 계단을 올라가서 천장에는 궁중전시가 있었다. 1948년 미군으로부터 인수한 한국공군 초창기 항공기 L-5 연락기와 함께 낙하산. 헬리콥터 등이 공중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 바로 옆에 하나의 엄청 큰 전시관이 있었는데 베트남 전쟁 때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전쟁의 아픔과거를 다 담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우리나라의6.25전쟁 때 미군과 어떻게 했는지 그때 입었던 옷 그리고 그때 썼던 안전모들이 놓여 있었다. 마지막의 전시관을 보면서 나는 느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못살았고 미국인들을 우대할만한 이유를 그리고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못 미국을 좋아했는지……. 미국과 우리나라의 소품 그리고 옷부터가 급이 달랐다. 차별대우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수류탄만 던 질줄 알면 바로 투입이 되었다고 한다. 점점 갈수록 현대로 바뀌면서 여군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항상 텔레비전에서만 그리고 가끔가다가 여경이 입은 옷을 보긴 보았지만 이렇겠기지 여러 종류의 군복들을 본 적을 처음이었다. 그리고 엄청 멋있어 보였다. 그 남아선호사상시대에 어떻게 군인이 될 생각을 했을까 과연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 뒤고 시간이 없어서 점심을 먹고 현충원으로 갔다. 우리나라의 현충원에 묻힐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섭지만 아주 죽을 때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자리가 어디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현충원에가서 우선 추모를 하고 그 밑으로 들어갔다. 역시 이곳도 일 학년 때 왔던 곳이다. 그 안에는 6.25당시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던 사람을 다 새겨놓은 비석이다. 아마 여기 새겨진 비석의 사람의 이름의 수가7000정도라고 들었다. 그밖에는 유골이 발견된 분들이 안착되어 있는 곳이다. 유골도 찾지 못하고 이름도 모르는 분들이 아마 더 많이 있을 것 이다. 현충원에 들어가서 정말 우리나라가 목숨 바쳐 전쟁터에서 싸우신 분들께 또 한 번 감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버스를 타고 안내원분과 함께 현충원을 돌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묘 이름은 형제의 묘와 부자의 묘가 있었다. 형제의 묘는 6.25전쟁에 나갔다가 형이 먼저 묻혔다가 동생의 유골을 발견하고 둘이 형제라는 걸 알고 형 옆에 바로 묻혀서 그 동의 묘의 이름이 형제의 묘이다. 그리고 부자의 묘는 아빠와 아들이 조종사였다. 하지만 비행기 추락사고로 인해 둘 다 돌아가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충원에는 초대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 묘가 있었다. 집적 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안내원선생님이 직접 본 결과 무려왕릉을 버금가는 크기라고 했다. 아마 초대대통령의 위엄을 보이기 위한 것 인 것 같다. 다음으로 본 곳은 지금의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영부인이 누워계셨다. 그 다음은 김대중 대통령의 묘다. 아마 동네에 있는 묘 보다 더 많이 작아 보인다. 조촐한 것을 원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 원하셨다고 한다. 전쟁박물관 보다는 현충원이 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돌아가신 군인 분들게 엄청 감사하고 다시 한 번 더 호국보훈의 달을 생각할 수 있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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