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욱 시인의 시에 빠져 시를 짧게 쓴 지도 꽤 되었다. 솔직히 짧은 시쓰는 것은 나에게는 쉬운 도전이었다. 나의 게으름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랄까나. 안구를 압도하는 굳건한 게으름의 흔적이랄까. 뱀이라는 르나르고라는 작가가 쓴 시가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너무 길다" 근데 이게 노벨상을 받은 시라고 하더이다. 지식IN에서는 포스트 모더니즘 어쩌고 탈장르화 어쩌고 메타포 어쩌고 하는데 그건 내가 시를 쓰는데 별로 쓸 데가 없는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글은 요점만 딱딱 쓰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쓸데없이 길게 늘여써봤자 글만 이상해져 가는거다. 이러면 안되지만 우성제의 시를 예를 들어보면 이해가 좀 수월할 것 같다. 우성제의 시를 딱 보면 운율에 맞춰쓴다고 이것저것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제목이 하늘이면 처음에 딱 두번 언급하고 시작할거다. 하늘 하늘 어쩌고 저쩌고. 컴퓨터면 컴퓨터 컴퓨터 어쩌고 저쩌고 . 그런데 점점 보면 글이 긴 시인지, 짧은 설명문인지, 짧은 감상문인지 구분이 잘 안간다. 이런 문제점들이 있는 거다. 하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짧게 한 마디 툭툭 던져놓고 끝낸다. 작정하고 짧게 썼을 경우에 길어봐야 4줄? 짧으면 한 줄로도 가능하다. 비타민C - 아이 셔. 정말로 내가 문예창작에 썼던 시다. 이런 나의 의도는 공감하려면 알아서 공감하고, 생각하려면 알아서 생각해라 랄까. 작가는 그저 논란만 던져줄 뿐이고 그것에 대한 답은 독자 스스로가 생각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처럼 이건 이렇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생각해라는 것은 옳지 않다. 예를 들면 소설 소나기에서 소녀가 "난 보라색이 좋아"라고 말한 것을 사람들은 보라색이 부정적인 의미라서 소녀의 죽음을 암시한다고 했지만 황순원 작가는 그냥 보라색이 좋아서 썼다고 대답한 일이 있었고, 최승호 시인이 쓴 시들이 수능에 자주나오는데 그가 말하길 자기가 쓴 시가 나온 대입문제를 풀었는데 모두 틀렸다며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알겠느냐고 한 적도 있었다. 글은 본인이 읽는 것이지 남이 대신 읽어주는 것이 아니다. 글의 이해는 남이 말해준 것을 그대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여야 한다.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는데 시 교육의 목표란 안목을 넓혀주는 것에 있다고 한다. 어린이가 덜 자란 어른이 아닌 어른이 계속 자라나는 어린이일 뿐이니 경험을 최대한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알려주는 것이 아닌 도와주는 것. 길게 쓰다보면 도와준다는 개념보다는 알려준다는 개념이 더 커질 뿐이다. 결국 짧게 쓰는 것이 독자에게 더욱 더 깊은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기에 "체육시간에 축구를 했다. 재미있었다."같은 것을 쓰면 그저 선생님께 혼날 뿐이니 이런 식으로 쓰자는 것이 아니고, 쓸 것은 쓰지만 그 양을 한번 줄여보자라는 것이다. 크게 주의해서 봐야할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쓸 때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