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그 해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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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지수 | 등록일 | 15.07.07 | 조회수 | 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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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그 해 여름 옥천삼양초 사서교사 이지수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노근리 그 해 여름(김정희, 사계절)’은 바로 몇 십 년 전 6.25 한국전쟁 중에 바로 이 나라 이 땅에서 일어났던 양민학살사건을 배경으로 한 아동문고다. ‘은실이’라는 어린 소녀를 중심으로 책을 읽는 독자들을 노근리 사건의 직접적 피해자이자, 목격자가 되게 하는데 몰입이 너무 컸던지 나 역시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장면에서는 울어버렸다.
책을 읽었을 때는 마침 여행에서 돌아오던 차안이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자마자 남편에게 노근리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지금당장 그날의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실함이 들었다. 왜 이제야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까? 나름 역사가 좋아 한때 사학 부전공까지 했건만, 내가 좋아했던 것은 자랑하고 싶은 한국의 역사만은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은실이가 되었다. 은실이가 되어 겪어본 노근리 사건의 전말은 알고 나니 모르고 있을 때보다 속이 더 답답해져왔다. 눈물도 사치, 어리다고 응석부리는 것도 사치,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오순도순 사는 것도 사치가 되어버린 내막에는, 개인의 그 어떤 선택도 적용되지 않았던 그날. 그날은 그렇게 오랜 침묵의 세월을 거쳐 바로 어제의 일처럼 내게 다가왔다.
노근리 사건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약 한 달 후에, 한없이 평화롭던 충북 영동의 마을에서 예고도 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의 눈앞에서 총부리를 겨눠가며 당장 피난을 떠나라는 미군 때문에 겨우겨우 피난길에 오른 수많은 이들. 은실이네도 그 가운데 하나다. 막연히 철길 위를 걷고 있던 사람들 머리 위로 영문 모를 전투기가 나타나 난데없이 폭격을 가하는 장면은 차라리 소설이라 믿고 싶었다. 지금도 기차가 철컥거리며 지나다니는 바로 저 철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찰나의 비명을 지르며,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갔다. 아수라장이 된 이곳에서 은실이는 막냇동생을 잃었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소중할진데 만약에 이 일이 내게 닥쳤다면, 그 난리통에 나만 살아남았다면 난, 과연 그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만 했을까. 또 철길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이들이 쌍굴다리 밑에 숨어들은 직후의 일은 또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살아 있는 것이 지옥인……’
이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 쌍굴 밖으로 나오려할 때마다 미군은 조준사격을 가한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총알의 야비규환 속에 은실이는 엄마를 잃는다. 많은 이들이 죽어가며 흘린 피로 쌍굴다리 밑의 개울은 새빨갛게 물들어 흐른다.
양민이라 불리는 이들은 위아래 같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정주고 살았던 선한 이웃이었다. 그런데 왜 한데서 이유모를 무서운 죽음을 당하고, 또 목격해야만 했을까. 피 흘리며 죽어간 어느 누구도 스파이가 아니었다. 이유도 모르고 피난길에서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 속엔 어른과 아이의 구별도 없었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 당시 우리를 돕기 위해 참전했던 미군이 그 주범이라는 사실에 잠시 할 말을 잃는다.
많은 이들이 스러져간 영동 쌍굴다리 위로 오늘도 그날과 똑같은 경부선이 지난다. 세월은 흘러 가여운 이들만 없어지고, 위로는 무거운 철길을 이고 아래로는 아직도 선명한 총알자국을 온몸에 새기고 서 있는 노근리 쌍굴다리만 여전하다.
* 노근리 사건 배경의 영화 : '작은 연못,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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