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의 칠백 의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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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삼원초 | 등록일 | 10.07.21 | 조회수 | 219 |
임진왜란 때, 정규 군대라고 할 수 있는 관군들은 왜병과 싸울 때마다 패하여 임금이 계신 서울마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임금은 눈물을 머금고 개성으로, 평양으로, 다시 의주로까지 피난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 이 안타까운 일을 지켜보던 백성들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일어나 맨손으로 싸우기를 자청하였습니다. 이들이 바로 ‘의병(義兵)’입니다. 임진왜란 때 충청남도 금산 성에서는 그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의병들이 일어나 왜군을 맞이하여 싸우다가 결사대 7백 명이 함께 죽었습니다. 지금 금산에는 그들의 무덤인 ‘칠백 의총’이 있습니다. 금산 성을 지키기 위한 큰 싸움은 두 번 있었는데, 일차 전투는 의병장 고경명이 지휘하는 의병이 왜장 고바야가와의15,700명 왜병을 맞아 싸우고, 2차 전투는 의병장 조헌과 승병장 영규(靈 圭)대사가 이끈 의병들이 왜군을 맞아 싸운 일입니다. 우리 조선의 의병들은 별다른 훈련을 쌓은 군인이 아니고, 게다가 별다른 무기도 가지지 못했지만 불타는 애국심으로 오직 죽기를 각오하고 맨손으로 싸운 것입니다. 금산 성을 지키기 위하여 7백 명으로 뭉쳐진 의병이 그 20배나 되는 왜군을 맞이하여 끝까지 싸우다가 마침내, 그 자리에서 의병장 조헌과 영규 대사를 비롯한 7백 명의 의병 모두는 장열한 최후를 마쳤다고 합니다. 이 싸움에서 적군도 그 죽은 수가 수천에 달하여 적의 통곡하는 소리가 천지를 울리는 듯하였고 그 시체를 옮겨가는데 사흘이나 걸렸지만, 다 옮기지 못해 나머지는 한데 쌓아 불태워 버리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금산 성을 지키다 함께 죽은 7백 의병 중, 조헌의 시체만 그의 고향 충북 옥천으로 옮겨졌을 뿐, 나머지 7백 의병의 시체는 어쩔 수 없이 한 무덤 안에 모시고 ‘칠백 의총(七百義塚)’이라 이름하였습니다. - 목민심서 182쪽 - (지경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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