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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3학년 2반 신해수
작성자 신해수 등록일 09.08.30 조회수 146
나는 우리 누나가 존경하는 위인 유관순에 대한 위인전을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쓴다.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군 병천면 용두리 지령 마을에서 유중권의 3남 2녀중의 둘
째 딸로 태어났다. 1910년 그녀가 9살이 되던해 일본이 한일 병합조약을 강제로 맺어 조선
을 식민지로 삼았고 그때 그녀는 어린 나이에 나라를 잃은 설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
하였습니다. 1916년 15살에 그녀는 공주영명 보통과 2학년을 마치고 미국인 선교사 사 부인
의 소개로 이화 학당에 교비 장학생으로 전학을 갔다. 1919년 3월 1일 이화악당의 1학년
재학중에 탑골공원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였고 3월5일 남대문 정거장의 만세운동에
참석하였다. 3월10일 모든학교에 임시 휴교령이 떨어졌고 그에 의해서 그년 3월 13일 사촌
언니 유예도와 함께 고향에 내려갔다. 3월 31일에 그녀는 매봉산에서 4월 1일에 독립만세를
알리는 봉화를 올렸다.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던중에 그녀의부모님은
일제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녀는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5월 9일 공주 지방 법원의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고 6월 30일 경성 복심 법원의
2심에서 작은아버지 유중무, 동네 어른 조인기와 함께 다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서대문 형무소에 보내쟜고 그곳에서 이화학당의 친구 어윤희와 함께 옥중투쟁을 부렸
다. 1919년 가을에 아기를 낳았다가 돌아온 양명이라는 여자의 아기의귀저기가 마르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시의 체온으로 아기의귀저기를 말려주기도 하였습니다. 1920년 3월 1일 다시한
번 그녀는 힘을모아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그해 9우러 28일 그녀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 등이 원인이되어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녀는 죽을때까지 대한민국 만
세를외쳤고 죽기직전 그녀는 "일본은 밍한다. 절대로 망하고야 만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
을 맞이하였고 그녀의 말처럼 25년이 흐른 1945년에 우리나라는 드디어 일본에게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나의 생각>

나는 우리 누나가 왜 유관순을 존경하는지 몰랐다.그렇지만 내가 위인전을 읽고 누나가 왜
유관순을 존경하는지 알게 되었다. 유관순은 어린나이인 19살에 감옥살이를 하던중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리고 일제가 얼마나 악독하고 잔인한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여러명의 독립애국자들에 의해서 식민지 지배되디 않고 이렇게 편한삶을 살고있
다고 생각하니 마음 편하고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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