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 선생님을 읽고 3-2 이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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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준희 | 등록일 | 09.08.07 | 조회수 | 120 |
주시경 선생님은 1876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이름은 상호, 호는 한흰메, 한힌샘 이었다. 어릴적 서당 훈장님이신 아버지 때문에 또래 아이들보다 일찍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가난하여 생할이 어려웠지만 항상 단정한 차림과 품위를 잃지 않았다.어느날 서울에 사시는 작은아버지가 오셨다. 전염병으로 자식을 잃은 작은 아버지는 상호를 양자고 입양하여 서울로 올라간 상호는 한문을 배웠다.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와 지리를 배웠다. 상호가 공부에 전념하고 있을 무렵 작은 아버지의 살림이 어려워져 더이상 그를 도울수가 없었지만 상호는 포기하지 않고 학교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계속했고 결혼도 하여 이름도 주시경으로 바꿨다. 일본이 을미사변을 일으켜 나라가 떠들썩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 선생에게 배울 기회를 얻어 미주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래서 '협성회보'라는 한글로 된 신문을 만들게 되었다. 그후로 우리나라 최초희 한글판 신문인 '독립신문'을 만들게 되었다. 독립회보에 탄압이 심해지자 주시경은 누나 댁에서 숨어서 살기도 했고 오랜 노력끝에 '국어 문법' 이라는 책을 완성하게 되었다. 주시경은 배재학당 보통과를 졸업하고 미국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 주시경은 역사상으로 처음으로 우리말을 학생에게 정식으로 가르치게 되었고 외국인에게도 우리말을 가르쳤다. 이렇게 일생동안 오로지 한글만을 위해 몸을 바쳤지만 한일병합 이후 일본의 감시와 박해가 심해지자 만주로 떠나기로 결심하여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날밤 만주로 떠날 짐을 챙기고 있을때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해 다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나이 39세 우리 민족에게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주시경 선생님 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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