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초등학교 로고이미지

학부모 독서동호회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그냥/윤상근
작성자 황서연 등록일 10.08.19 조회수 10
그냥

                                                                                                                                   윤상근

 

"무슨 색깔을 좋아하세요?"하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개 자기의 좋아하는 색깔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슨 낱말을 좋아하세요?"하고 물으면 망설인다. 낱말(단어의 풀어 쓴 이름)은 색깔보다 수가 많아서이기도 하고 평소에 특별히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을 좀 주어 생각해 보게 한다면 여러 말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낱말이란 거의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제일 많이 '사랑'이라는 말이 나올 것 같고, '가을 하늘'이나 '노을'같은 예쁜 단어도 있을 것 같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라는 소설이 나온 뒤에는 '아버지'라는 말에 가슴이 찡해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냥'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만 나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단어이다. 그런데 그 말이 내게 의미를 가지고 다가왔다. '임동창'이라는 사람에 대한 글을 읽은 후이다. 피아니스트인 그의 호가 '그냥'이었다. 그는 '그냥 살고, 그냥 공부하고, 그냥 일한다'고 했다. 그 글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신선함 바로 그것이었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내게 그 말은 구원의 소리로 들렸다. 그래 인생은 그냥 사는 거야. 부질없는 욕심, 미련 다 버리고 그냥 사는 거야. 그냥 공부하다 보면 성취도 따르는 것이고, 그냥 일하다 보면 대가도 주어지는 것을.

'그냥'이라는 말은 현자의 말이고 완숙의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에서 좋을 글을 보았다. 그것은 시였다. 며칠 동안 길을 가다가도 내게 웃음이 나오게 만든 그 시는 이렇게 태어났다.

  김용택이란 시인이 근무하고 있는 전남 마암 분교는 섬진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 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창문도 낡은 건물이며 운동장도 그리 넓지 않은 학교. 학교 안쪽엔 아직도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나 마암분교에는 섬진강보다 더 맑고 푸른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며 공부하고 있는 곳이란다.

  매주 토요일이면 그곳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 된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시를 쓰라는 과제를 내주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항상 다섯 편씩을 쓰라고 하는데 한두 편을 쓰라고 하면 십 분도 안 지나 "다 썼어요"하고 쪼르르 달려오기 때문이다.

  그 날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시 숙제를 내준 뒤 그 동안 밀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일하는 틈틈이 아이들을 둘러보니 아이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긴 듯 저마다 진짜 시인이 된 듯한 모습으로 열심히 시들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삼십 분도 안 되어 양 볼에 장난기가 잔뜩 붙어있는 한 녀석이 급하게 앞으로 달려나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선생님께 공책을 내밀었다.

 "선생님 다 썼어요."

 "벌써?"

 "네, 이제 나가서 누렁이랑 놀아도 되지요?"

 녀석은 선생님이 대답할 겨를도 없이 후다닥 운동장으로 뛰어 나갔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써 온 동시를 죽 훑어보았다. 그런데 맞춤법이 엉망인 한 편의 시가 선생님의 가슴을 울렸다고 한다. 그 시의 제목은 '사랑'이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참 조타

    왜 좋으냐하면

    그냥 조타

 

   이 시는 생각만 해도 내게 미소를 자아낸다. 티없이 맑은 아이의 심성이 그대로 나타나 감동을 준다.

  '그냥'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는 보편적인 단어이며 감동적인 말이다. 순수,완숙의 경지를 드나드는 말이며 동심의 언어이고 또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이전글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신달자
다음글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박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