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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팡팡 (보육실)아이들을 만나면서
작성자 옥동초 등록일 09.04.27 조회수 234

재미팡팡(보육실)아이들을 만나면서 ---- 97년 11월8일 강영화

노오란 은행잎이 하늘과 땅을 수놓는 가을, 11월이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간다. 코끝이 시큰하지만 상쾌하다. 그날 날씨따라 아이들과 안에서 있을까, 밖에서 놀까 한다. 맛있는 점심시간이 지나서 먼저 한둘씩 유치원 아이들부터 졸졸이 보육실 문을 두드린다. 어쩔땐 오다가도 숨어버린다. 도서관을 지나오는데 숨박꼭질하는거다. 하나둘씩 찾아낸다. 우리가 마실 물을 급식실가서 떠온다. 달마다 그 활동주제에 따른 책과 아이들이 보고싶은 책을 꺼내 읽어준다. 스스로 읽는 아이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책들을 본다. 요즘은 장애에 관한 이야기다. 저마다 자기가 본 장애인을 말하고 그려보고 한다. 숙제가 있을땐 숙제를 하고 학습지를 가져와 풀기도 한다. 날이 좋으니 바깥바람을 쐬러 간다. 단풍잎들을 주워서 모빌도 만들고 탁본도 한다. 새참으로 아이들과 간단하지만 우리입맛을 살리는 요리를 한다. 김치부침개라든가, 콩볶기, 감자경단, 가끔가다 별미로 과자를 한다. 집에서 가져온 해바라기씨를 넣어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제일 즐거워하는 시간이고 모두 모여 만들면서 잔치를 하는 분위기다. 한솥밥먹는 식구가 된 듯하다.
새참시간엔 감사의 밥 노래와 새로 배운 노래도 부르고 -요즘에 가을노래가 한창이다.-책도 다시 같이 보고 그날 교실에 있었던 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러다 집에 가는 버스시간에 맞춰서 하나둘씩 가고 새참도우미가 남아서 정리를 도와준다. 늦게까지 엄마 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주로 도서관에서 책들을 보거나 운동장에서 놀다 간다. 아이들 소리가 사라지면 보육실 청소를 하고 문을 나선다.

지난 해 아이가 입학한 해라서 학교에 자주 나오면서
배식봉사도 하고 처녀때 일했던 공부방 경험을 살려 방과후에 활동봉사를 하였다. 1주일에 한번 저학년 아이들의 숙제와 학습을 도와주고 1학년부터 5학년까지 모아서 연극반을 꾸려 방학맞이공연도 하였다. 처음해보는 아이들과 얼굴익히고 서로 적응하느라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공연했지만 나름대로 그 과정이 재밌고 신났다. 때때로 자기 기분대로 안오기도 해서 모일때마다 역할을 다시 새로 정하기도 하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수박농사짓느라 쉬는 시간에 틈내어 온거라 마음이 급해서 아이들과 여유있게 못보낸 것은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의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의 배려와 제안으로 보육실이 생겼다.
도서관 옆 시청각실을 개조해서 만들고 바닥엔 장판을 깔아 방처럼 꾸몄다. 해바라기 화분이 있는 햇빛 잘드는 방이다. 아주 밝아 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이 환해진다. 유치원부터 5학년까지 아이들이 온다. 대부분 학원을 안다니고 자기가 알아서 차시간에 맞추어서 버스를 타고 다닌다. 부모님들이 모두 일하시는 아이들인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있는 것처럼 꾸미려 애를 썼다. 아이들과 보육실 이름도 공모해서 붙이고 -재미팡팡이다-자기 얼굴들을 그려 벽에 재미팡팡친구들이라고 커다랗게 붙였다. 아이들과 부를 노래도 같이 그림그려 붙이고 구구단이며 우리말공부도 쓰고 동아리하는 게시판도 만들어 바느질, 신문, 일어동아리 활동도 한다. 한쪽엔 우체통이 있다. 다쓴 달력이나 이면지로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만들어 쓰고 우체부가 있어 전달해준다. 색종이로 종이접기와 상자들을 모아서 언제든지 만들기를 할 수 있게 둔다. 아이들과 주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또 체조도 하고 계절에 맞는 생태놀이-밖에서 따온 봉숭아도 물들이기, 단풍잎모빌..-도 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배우기위해 전해오는 말놀이들을 부지런히 찾아 적어놓고 같이 따라한다. 아이가졌을때 배웠던 개체조도 가끔가다 하고 몸놀이도 한다. 새참시간엔 함께 해먹고 싶은 것들을 아이들이 꺼리를 내놓으면 같이 만든다. 철따라 우리 입맛도 살리고 몸에도 좋은 것 위주로 한다. 이를테면 떡, 죽, 부침개, 감자, 고구마 , 과일..따위이다. 요즘엔 추워져서 수정과나 모과차도 만들거다. 다행이도 번거러운 꺼리마련에 사려깊은 방과후 담당선생님의 협조로 함께 재료들을 일일이 장을 봐온다. 일반적으로 학교의 아이들 중 15%정도가 부모 한쪽과 사는 경우란다. 할머니가 홀로 돌봐주시는 경우도 한반에 한 두명이 된다. 그래서 아침을 거르거나 저녁도 라면으로 해결하는 것을 본다. 학교에서 먹는 점심 한끼가 제대로 밥일때가 많은 거다.이런 경우니 혼자서 해결하는 상황이 많은지라 새참만들기를 통해 자기 먹거리를 잘 챙겨먹었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아이들은 방과후활동하랴 늘 배가 고프다 한다. 그래서 더욱 영양있고 양도 있게 한다. 새참시간엔 밥먹으면서 정든다고 만드는 시간이 동네 우물가같다. 집에서 일어난 일이라든가 수업시간에 일어난 일이라든가 생활이야기들이 꽃을 피운다. 동생이 생긴 이야기, 할머니 콩베는 것 돕다가 낫에 벤 이야기,, 들어보면 아이들의 환경이 그대로 전달된다. 재미팡팡이 문 연지 6개월밖에 안됐는데도 벌써 다섯명이나 다른 학교로 떠나갔다. 집안의 사정따라 움직이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겐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 시간이 그래서 무척 소중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가끔가다 속상하거나 안좋은 일이 있을때 내게 와서 털어놓고 기댄다. 아이들이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해줄때 내가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듯 싶어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더욱 아이들을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내 아이를 넘어서 여러 아이의 사회적 부모노릇하는 것이기에 늘 어떻게 아이들을 도울것인가 생각을 많이 한다. 재미팡팡에선 아이들이 주체이고 난 도우미라고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른의 역할이 결국 독립하게 도와주는 것이라 보기에 잘되든 못하든 스스로 하는 걸 권장한다. 숙제도 그림그리는 것도 만들기할때도 새참만들때도 방법만 알려주고 스스로 하게 한다. 하다 못하면 옆의 동무들에게 물어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동료들끼리 해결한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선생님도 옆집아줌마도 된다. 욕심같아선 아이들의 멘토(인생의 나침반같은 역할)가 되고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오히려 내겐 스승이다. 감정조절도 가르치고 어른다움도 가르치고 ... 그래서 더욱 아이들을 이해하기위해 아동심리학도 보고 교육학 관련 책들도 보고 나름대로 노력중이다. 아이들을 통해서 배운다. 아이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희망을 준다. 어려운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다. 천진난만하다. 그래서 심각하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밝아진다. 이제 좀 있으면 겨울방학이 올텐데 재미팡팡의 아이들이 여름방학때처럼 학교오는 게 힘들까 지레 겁이 난다. 몇 번 안다니는 버스지만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탓에 버스비도 걱정이다. 정규수업시간이 아니고 또 제일 중요한 점심이 해결되지 못하니 더욱 그렇다. 몇몇 안되는 아이들과 여름방학엔
도시락 싸와서 맛나게 먹기도 했지만 추운 겨울이라 어렵겠다- 물론 같이 밥해먹으려고 개인적으로 전기밥통을 갖다놓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희망을 걸고 아이들과 만날 생각이다. 좋은 일이 생기길 기대하고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걸 믿고 겨울을 기다리고 첫 눈을 기다린다. 아이들과 물들인 봉숭아 꽃 연정이 싹트는 11월, 아름다운 계절, 나는 아이들과 그렇게 행복하다...

(재미팡팡이야기는 옥동 자유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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