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주 훈화자료 - 애국가가 만들어지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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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정원 | 등록일 | 14.06.16 | 조회수 | 364 |
애국가가 만들어지기까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와 정치제도를 근대적인 체제로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더니 갑신정변, 을미사변을 거쳐 국내의 상황은 혼미를 거듭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와 구국 의지를 불태우고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자주 독립 사상과 자아각성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의 개화시가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연이어 발표하였다. 그런 가운데 처음으로 가창된 애국가가 있었으니 윤치호가 짓고 당시 배재 학당의 음악교사인 버커어가 영국의 민요곡( 아일랜드 민요곡 올드랭 사인)을 붙여 187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렀다 (오늘날 불리고 있는 애국가는 작사자에 대하여 윤치호설과 안창호설의 두 설이 유력하나 여기에서는 윤치호설을 소개하였다.) 그러던 것을 거기에다 오늘의 곡을 붙인 사람은 안익태이다. 그는 평양태생으로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에 건너가 음악 공부를 쌓았으며 1937년 비인에서 애국가를 작곡하였다. 이 애국가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국가로서 채택되기에 이르렀고 오늘날 온 국민은 이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나라의 무궁한 발전과 겨레의 영원한 번영을 희구하게 되는 것이다.
애국가에 대한 예절 ① 애국가의 곡조에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거나, 또는 곡조를 변경하여 불러서 애국가의 존엄성을 손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② 애국가가 연주될 때에는 모두 기립한 자세로 들어야 하며, 걸어가다가도 애국 가를 듣게되면 손에 들었던 물건을 그 자리에 놓고 끝날 때까지 바른 자세로 서서 들어야 한다. ③ 애국가를 1절만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나머지 가사를 소홀히 하지 말고 정확 한 가사를 4절까지 익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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