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근·현대 충북 교육의 요람 청주 주성초등학교가 개교 120주년을 맞았다. 주성초는 1896년 9월 17일 충북에서 두 번째로 개교한 학교다. 그동안 1907년 개교한 것으로 알려지다 최근에서야 개교 시점을 11년 앞당긴 1896년으로 바로 잡은 주성초의 역사에는 가슴 아픈 한국 근대사의 상처가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다.
●1896년 청주공립소학교로 개교
주성초는 1895년 공포된 소학교령에 의해 이듬해 청주관아 부속건물(현 상당구청 자리)에서 청주공립소학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교장은 청주군수였고 그 해 10월 김계명 교사가 첫 교원으로 발령이 났다.
그동안 주성초는 민영은 청주군수가 교장으로 취임한 1907년 청주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학교 역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한 도민의 제보로 관보 434호(1896년 9월 21일자)에 ‘청주군 공립소학교’로 개교했다는 공고 내용을 확인하며 잃었던 소학교 시절의 기록을 되찾게 된 것이다.
민병구 주성교육박물관장은 “학사기록 일체를 말소해 실체를 부인하도록 한데는 일제의 숨은 저의가 있었던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며 “조선의 학교 교육이 일본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한·일 합방의 명분을 확보하려 했던 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 교사를 신축해 청주시 상당구 영동의 현재 자리로 이전한 것은 1922년이다. 이듬해에는 지역 유지들이 중심으로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강당을 신축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인 이 강당은 현재 주성교육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39회 졸업생인 민병구 관장은 “당시 일제 강점기 하에서 일본 교사들에게 우리말을 쓴다고 벌을 받고 맞았던 기억이 난다”며 “초등학교 2학년 때 해방이 됐는데 선배들이 특히 악랄했던 일본인 교사가 살던 관사에 찾아갔다. 그 교사의 아내가 쩔쩔매며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을 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120년 간 2만5,000여명 졸업생 배출
‘주성’이라는 교명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948년 ‘청주주성국민학교’로 개명되면서부터다. 풍수지리상 행주형(行舟形)이어서 불리던 청주의 이칭인 ‘주성(舟城)’에서 따온 것이다. 이전에는 청주제일보통학교, 청주영정공립보통학교, 청주영정공립심상소학교, 청주영정공립초등학교, 조선국공립초등학교 등으로 불려왔다.
120년 역사를 지닌 주성초의 졸업생은 2만5047명에 이른다. 배출된 인물도 쟁쟁하다. 정치계, 법조계, 교육계 등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주성초를 거쳐 갔다.
졸업생으로는 한정구(2회) 전 청주시장, 박노태(2회) 전 자유당충북도당 위원장, 최영백(23회) 항일운동가, 김준철(25회) 전 청석학원 이사장, 정범모(27회) 충북대 초대 총장, 정창섭(28회) 전 서울대 미술대 학장, 신동문(30회) 시인, 임광수(31회) 임광토건 명예회장, 정인영(32회) 전 충북교육감, 유성종(34회) 전 꽃동네대 총장, 김영세(34회) 전 충북교육감, 이택원(35회) 전 충북대 총장, 송해준(39회) 충북 초대 지방경찰청장, 이상훈(39회) 전 충북개발회장, 신경식(40회) 전 국회의원, 김신일(42회) 전 교육부총리, 김수현(42회) 작가, 안병우(48회) 충주대 총장, 박재갑(49회)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한범덕(54회) 전 청주시장, 조원일(56회) 청주병원장 등이 있다.
출처 : 개교 120주년 맞은 청주 주성초 < 교육 < 기사본문 - 동양일보 (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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