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을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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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우다영 | 등록일 | 14.11.29 | 조회수 | 115 |
나는 '장영실'이라는 책을 읽었다.독후감을 쓰기 위해 읽게 되었다. 윤사웅과 최천구. 이 두 사람은 세종이 가장 아끼는 천문학자였다. 천문 현상을 관측하려면, 별의 위치를 정확히 잴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장영실은 정밀한 도구를 만드는 데 누구보다 뛰어났다. 장영실의 아버지는 원나라 말기의 기술자였다. 장영실은 기술자였던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재능을 물려받았다. 장영실은 아버지의 시대에 맞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이로 커 갔다. 쇠를 다루고 기구를 만드는 장영실의 정교한 솝씨는 당시 왕인 태종에게도 알려졌다. 장영실은 동래현을 떠나 궁궐의 기술자로 일하게 되었다. 왕자인 충년 대군을 모아 물시계를 만들 수 있었다. 충년 대군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학물의 깊이나 사람됨이 형제 가운데 으뜸이었다. 수학이나 천문학, 농학, 이학 같은 과학 기술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충년대군도 장영실의 뛰어난 기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다짐했다. 장영실은 세종의 깊은 배려에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당시 가장 장확한 시계는 물시계였다. 하지만 자동이 아닌 수동이었고,간혹 시간도 정확하지않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천문 현상은 이렇듯 왕의 권의를 세우는 데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라의 살림을 올바로 꾸리기 위해서는 방치와 위치, 시간과 달력 같은 여러 가지 제도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문 현상을 꾸준히 관측해야 한다. 천문 관측을 정확하게 하려면 여러 가지 관측 기기들이 꼭 필요하다. 자격루를 만들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미 이루었기 때문이다. 해와 달이 별은 영원하지만, 사람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장영실은 동양 최초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남긴 채, 쓸쓸히 엿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뱌슬자리에서 물러난 뒤, 장영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장영실에 관철기록이 전혀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장영실은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업적들을 수백년 동안 우리 조상들의 삶에 뚜렸한 흔적을 남겼다. '장영실'을 읽고 나니 장영실이 정말 대단했다. 그런데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니 정말 안타까웠다. 비록 장영실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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