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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손병희 선생님의 유허지 답사기
작성자 이서진 등록일 12.05.02 조회수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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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답사보고서

 

 주중초등학교 4학년 1반 이 서 진

 

 ◈답사날짜:2012년 4월 28일  

 ◈답사한 사람: 아빠,엄마,서진

 ◈답사목적:4월의 대전 ,충청 대표로 선정된 현충시설 둘러보기

 ◈답사장소: 의암 손병희 선생님의 유허지(청원군 북이면 금암리 )

 

 

지난 토요일 오후 아빠,엄마와 함께 청원군 북이면 금암리에 위치한 의암 손병희 선생님의 유허지를 찾았습니다.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중의 한 분이셨던 손병희 선생님 유허지로 들어서는 주차장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우리들을 맞아주었는데 왠지 가슴이 벅차고 뭉클했습니다. 의암 손병희 선생님에 대한 기대감으로 입구로 향했습니다

 

유허지란 ‘남겨진 터’라는 말로 역사적 사실 기록만 남아 있고 그 장소에 유물 문화재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사람들은 유허지에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비석을 세워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석을 유허비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의 생가를 중심으로 영당,정자,동상,기념관등이 조성돼 있습니다.

 

건물 한쪽으로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건립한 유허비가 있었습니다. 홀로 외로이 서있는 유허비가 일본인들에게 맞섰던 선생님의 모습처럼 당당해 보였습니다. 유허비를 둘러 본후 생가로 향했습니다. 충북 청원군 북이면에서 태어나 22년 동안 사셨다던 생가는 앞면 4칸, 옆면 1칸의 초가집으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민속촌이나 민속마을에서 흔히 보던 집이었지만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맞서신 손병희 선생님의 생가여서 인지 남다르게 보였습니다.

 

특히 우리 고장에서 태어나 자랐다니 햇빛을 받아 빛나는 초가집이 자랑스럽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생가 옆에는 의암 손병희 선생님의 동상이 하늘과 맞닿은 듯 늠름하고 멋진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칠 듯한 모습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일본군에 대항하던 의암 손병희 선생님 모습에서 독립된 나라의 소중함을 배우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슴 깊이 되새겨 봅니다. 생가와 동상을 앞으로 하고 쭉 뻗은 중앙로 끝에는 손병희 선생님의 영정이 있는 영당을 태극무늬의 문이 반겨줍니다.

 

 3·1운동을 대표하여 독립선언을 하셨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복역중 병보석으로 출감 요양중 62세의 일기로 순국하실 때까지 오로지 이 나라의 자주독립만을 생각하셨던 의암 손병희 선생님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 지내기 위해 건립된 영당을 보니 마음이 차분하고 숙연해 졌습니다. 의암 손병희 선생님의 유허지를 둘러보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소중함과 나라사랑의 정신을 마음 가득 담아 ‘대한독립만세’ 를 외쳐봅니다. 유허지를 둘러보는 동안 우리가족외에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손병희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고 나라사랑의 마음도 길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 우리나라 만세!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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