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의사 80주기를 맞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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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희선 | 등록일 | 12.04.27 | 조회수 | 169 |
윤봉길의사는1908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민족의 비운을 느끼고 보통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아마도 일본 사람들이 일본식 공부를 시켰기 때문일것입니다. 어리지만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1928년에 부흥
원을 조직하고 또 1929년에는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으
나, 이런 활동을 하면서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되자 1930년 2월 만주로 망명한 후 다시 상하이로
옮겨 갔습니다.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백범 김구선생님이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에
가
입하였답니다.
식이 열 리는 훙코 우공원에 들어가 폭탄을 던져 일본의 상하이 파견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하고 상 하 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을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인 노무라와 제9사단장 우 에다 그리고 주중 일본공사 시게마쓰 등은 중상을 입혔답니다. 난 윤봉길의사의 용감성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윤봉길의사는 이런 큰 일을 한 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감옥으로 보내졌답니다. 그후 12월 18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총살되었습니다. 너무 무섭고 끔직했습니다. 그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했을까 상상이 됩니다. 이렇게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기에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드렸답니다. 나라를 지키기위해 목숨을 바치신 어른들을 생각하며 나라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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