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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만승초 이은재
작성자 최경환 등록일 14.01.14 조회수 6
양력 현재 우리가 쓰는 것은요.... 
일제 시대에 들어온 것이고요..
음력은 고조선 무렵 중국과 같이 사용..

동양의 음력, 즉 중국 기원은 일단은 은나라까지 기원이 올라갑니다.

우리의 달력은 누가 만들었을까?

현재 우리가 쓰고있는 태양력의 기원은 이집트까지 거슬러 갈수 있지만 태양력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이다. 고대 서양에서는 한 가 시작하는 날을 춘분 날로 정했다. 문에 춘분이 들어있는 달을 1월로 정했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동지 날을 기준으로 동지가 들어있는 달을 한 의 시작으로 했다.

고대 로마 시대 초기의 로물루스 시대에는 춘분을 일년의 시작으로 하고 일년을 10개월로 했다. 또한 일년의 길이는 3백 4일로 하는 기이한 달력을 사용했다. 그 뒤를 이어 로마 황제가 된 누마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710년 경에 2개월을 추가 1년을 12개월로 하고, 길이를 355일로 하는 누마(Numa)력으로 개력했다. 그러나 이 달력은 여전히 1태양년의 실제길이와 11일 정도 차이가 나 사용하는데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그 뒤 율리우스 시저의 집권 시대인 기원전 46년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인 소시게네스의 조언으로 1년을 365일로 하는 새 달력을 만들었다. 이 달력에서는 오늘날과 같이 한 달의 길이를 31일과 30일을 번갈아 넣었다. 달의 크기는 원칙적으로 홀수인 달을 31일로 하고, 짝수인 달은 30일로 정했다.

그런데 평년을 365일로 하기 위 2월에서 하루를 떼어 내 29일로 했다. 윤년인 경우는 2월을 30일로 했다. 춘분날은 누마 왕 와 마찬가지로 3월 23일로 정했다. 태양력의 1년 길이는 365.25일로 매 4년마다 윤년을 두었다. 이것을 율리우스력이라 한다.

율리우스가 개력을 할  계절과 달력의 날짜가 이미 3개월이나 차이가 나 있었다. 그래서 율리우스는 23일 짜리 윤달과 67일 짜라 윤달을 끼워넣어 계절을 맞추었다. 문에 기원전 46년은 실제로 445일이나 되는 긴 였다. 율리우스는 개력 이후부터 달력을 계절에 맞추기 위 기존의 1월을 3월로 하고 그 앞에 새로 두 달을 넣었다. 이에 따라 모든 달이 두 달씩 미뤄져 당시에 5월을 의미하는 퀸틸리스(Quintilis)가 7월이 됐다.

율리우스는 생일이 7월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 7월달의 본래 명칭인 퀸틸리스를 자신의 생일 달의 의미를 지닌 율리(July)로 개칭했다. 따라서 7월(July)의 영어 명칭은 율리우스의 생일 달이라는 의미인 셈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네로의 달

율리우스가 브루투스에게 시된 후 로마 황제로 등극한 이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이다. 그도 율리우스를 본받아 달력에 이름을 남기려고 했다. 그는 트라키아와 아크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 8월달의 본래 명칭을 바꾸었다. 그의 생일은 8월이었는데, 아우구스투수가 8월의 명칭을 바꾼 것은 자신의 생일달을 기념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그는 이 달의 본래 명칭인 섹스틸리스(Sextilis, 제6번째 달이라는 의미)를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바꾸었다. 더욱이 황제인 자신의 달이 다른 달보다 작으면 황제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면서 2월에서 하루를 떼어와 31일의 큰 달로 변경했다. 그러자 1월에서 7월까지는 홀수인 달이 큰 달이 되고, 7월과 8월이 연속서 큰 달이 됐다. 그리고 8월부터 12월까지는 짝수 달이 큰 달이 됐다. 이 문에 2월달이 다른 달에 비 유난히 작아져 버렸다. 양력은 태양의 운행에 따라 1년의 길이를 정했지만, 달의 길이는 임의대로 정졌던 것이다.

그 후, 악명이 높던 네로 황제는 이들을 본 따 4월을 자신의 달인 네로네우스(Neroneus)로 고쳤지만, 네로 황제의 사후에 다시 본래의 명칭으로 되돌아왔다.

1년에 11분, 1천년에 10일 차이

1년의 길이는 실제의 1년 길이인 365.2422일에 비 0.0078일이 길다. 이는 약 11분 14초에 당한다. 따라서 1백 28년이 지날  마다 태양년의 길이가 하루씩 더 길어지게 된다. 이 문에 춘분날이 1백 28년마다 하루씩 앞당겨지게 돼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 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1582년에 춘분날은 3월 11일로 본래의 위치에서 이미 10일이나 크게 앞당겨져 있었고 이는 종교적으로 큰 문제였다.

당시 유럽의 모든 국가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행사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날은 부활절이었다. 부활절은 춘분날 후 첫번째 오는 보름을 지나 첫번째 일요일 날로 정졌다. 만일 첫번째 오는 보름날과 일요일날이 겹쳐지면 다음 주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킨다. 문에 달력의 오차로 춘분날이 앞당겨지면 부활절도 앞당겨지게 됐던 것이다.

그레고리 13세는 이를 본래 지키던 부활절로 되돌려 놓기 위서 개력을 단행했다. 새로운 달력에서는 우선 태양년의 길이가 실제와 거의 같도록 윤년의 횟수를 조정했다. 서기 연도가 4로 나누어지는 해를 윤년으로 정하고, 동시에 100으로 나누어지는 는 평년으로, 다시 400으로 나누어지는 는 윤년으로 정했다. 예를 들어 서기 1900년을 평년이고, 서기 2000년은 윤년이 되는 셈이다. 이런 원리로 400년간 윤년을 1백회 두던 규칙을 97회 두는 것으로 고쳤다. 이렇게 하면 1태양년의 길이가 365.2425일이 돼 실제의 길이인 365.2422일과 거의 유사한 값이 된다.

부활절을 맞추려고 10일 빼먹어

다시 춘분날의 위치를 부활절 제정 당시의 날짜인 3월 21일로 되돌려 놓기 위 1582년10월 4일 (목요일)의 다음날을 1582년 10월 15일 (금요일)로 변경했다. 따라서 1583년부터는 춘분날이 3월 21일로 밀려나게 됐다. 하지만 1582년 10월 5일부터 14일까지의 날짜는 존재하지 않는 날이 됐다.

이  날짜는 건너뛰었지만 요일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를 그레고리력이라 하는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이 이 것이다.달력의 역사 ◀◀◀

년, 월, 일은 다음 세 가지의 천체운동의 주기에서 만들어집니다. 

년(年)- 태양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바퀴 완전히 도는데 걸리는 시간 
월(月)은 보름달과 다음 보름달 사이의 시간 
일(日)은 가 남중했다가 다음 남중할 까지의 시간 
천체 관측이 정교짐에 따라 사람들은 일년이 우수리 없이 딱 떨어지는 날 수와 달 수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대 문명의 초기에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에 있던 농부들은 일년이 열두 달로 되어 있고, 한 달은 보름달과 다음 보름달 사이의 평균시간인 28.8일로 된 달력을 고안하였다. 이 날 수를 더하면 일년이 354일이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년보다 11일이 짧다.

이 고대의 농부들은 그들이 씨 뿌리는 날짜가 점점 계절과 어긋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달력을 계절과 일치시키기 위서 여분의 날과 달을 달력에 더했는데, 처음에는 불규칙하게 더했으나 나중에는 19년 주기로 하였다.
태양년이 365일에 가깝고 매 4년마다 하루를 더야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낸 사람은 이집트인이었다. 그러나 그 이집트 천문학자들은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것에 대 자기네 왕을 설득시키지 못하였다. 그 문에 계절과 달력은 천천히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 후 200여년이 지난 후, 기원전 46년에 가서야 쥴리어스 시저 (Julius Caesar)는 윤년이 도입된 365일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 달력도 그렇게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매 4년마다 하루를 더한 것은 오히려 달력이 매년 약 12분 앞서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쥴리어스 시저가 그의 달력을 만든 후 천 수백년이 지난 후, 이 작은 오차는 누적되어 약 6일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그 결과, 부활절 같이 종교적으로 중요한 날이 계절보다 점점 일찍 찾아왔다.
1582년에 가서는 이 차이가 꽤 커졌다. 그래서 교황 그레고리 13세 (Gregory XIII)는 달력과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바꾸었다. 즉,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는  중에서 400으로 나누어지지 않는 는 윤년이 되지 않게 하였다. 예를 들면, 2000년은 400으로 나누어지기 문에 윤년이지만 1900년은 나누어 떨어지지 않기 문에 윤년이 아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오차가 3300년 동안에 약 하루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까지 사용하던 달력을 계절과 일치시키기 위서 1582년은 1년의 길이를 10일이 줄어든 355일로 하였다. 즉, 1582년 10월 4일 다음날이 10월 15일이 되도록 하였다. 

그레고리 달력을 채택함으로써 달력과 계절은 꽤 잘 맞았다. 그러나 여전히 일년을 이루는 날짜 수가 태양주위를 도는 지구의 회전주기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세 가지 천체 주기를 바탕으로 한 달력을 사용하는 한, 매달 또는 매년에 속한 날짜 수가 달라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太陰曆(태음력) 


첫 번째, 태음력(太陰曆)은 달의 운행만을 기준으로 삼아 달이 평균 29.53059일을 

주기(週期)로 차고 지는 것을 1달로 정서 만든 달력입니다. 순태음력(純太陰曆)으로도 

불리는데, 현재 일상에서 사용되는 우리의 음력(陰曆)과는 다른 역법입니다. 윤달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계절과 달력이 점차 달라지는 결점이 있지만 현재에도 

이슬람문화권에서는 사용되고 있습니다. 


太陽曆(태양력) 


두 번재, 태양력(太陽曆)은 현재의 양력(陽曆)으로 태양의 공전주기인 365.2422일을 

12달로 나누어 만든 것입니다. 로마시대를 기원으로 보는데, 율리우스력에서 

그레고리력으로 발전했습니다. 


율리우스력은 로마의 대황제 율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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