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있는 곳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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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유제원 | 등록일 | 15.12.21 | 조회수 | 178 |
옛날, 전라 남도 영암 땅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암 원님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갔다.
"염라대왕님, 소인은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벌써 저를 데려오셨습니까? 이승에서 좀더 살게 해 주십시오"
원님은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수명을 적어 놓은 책을 들여다보고는 아직 젊은 나이인 원님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다. 내 마음이 별하기 전에 얼른 사라져라."
염라대왕은 원님을 저승사자에게 돌려보냈다.
"이승으로 나가려는데 어떻게 가면 될까요?"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그냥 보낼 줄 수는 없다. 너 때문에 헛걸음을 하였으니 수고비를 내놓아라."
"어떡하지요 ? 지금 전 빈털터리인데........"
"그러면 저승에 있는 네 곳간에서라도 내놓아라."
사람은 누구나 저승에 곳간을 하나씩 가지고 있게 마련이었다.하지만, 이승에서 부자라고 해서 그 곳간이 꽉 차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찬 가지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저승의 곳간까지 텅 비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곳간은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한 만큼 재물이 쌓이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님은 그렇게 하길 하고 자기 곳간으로 갔다. 그런데 그 곳간에는 특별한 재물이랄 게 하나도 없었다 고작 볏 짚 한 단이 뎅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 사람, 남에게 덕을 베푼 일이라곤 없는 모양이네 !"
옆에 서 있던 저승사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찌하여 제 곳간에는 고작 볏짚 한 단뿐인가요?"
"너는 이승에 있을때, 남에게 덕울 베푼 일이 없지 않느냐?"
원님은 순간, 쥐구멍에라도 숨고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생각해보니, 남에게 좋은 일 한번 변변히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단 한 번, 몹시 가난한 아낙이 아기를 낳을 때 짚이 없어서 쩔쩔매는 것을 우연히 보고 짚 한 단을 구해다 준 게 전부였다. 저스으이 곳간에 짚단이나마 있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남에게 덕을 베푸는 일입니까?"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고,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주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는 것이 다 남에게 덕을 베푸는 일이니라."
원님은 자신의 곳간이 비어 이승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어쩐다......?'
그 때였다. 저승사자가 핀잔하듯 말했다.
"네 고을에 사는 주막집 딸ㄹ은 곳간을 그득하게 채웠는데, 고을 원님이라는 사람이 이게 무슨꼴이냐 ? "
"아니, 그게 무슨 얘깁니까?"
"덕진이라는 아가씨의 곳간에는 쌀이 수백 석이나 있으니, 일단 거기서 쌀을 꾸어 계산을 하고 세상에 나가서 갚도록 하여라."
저승사자가 원님에게 제안을 했다. 결국 원님은 덕진의 곳간에서 쌀 삼백 석을 꾸어 셈을 치를 수 있었다.
원님은 저승사자를 쫓아 얼마쯤 갔다. 드디어 이승의 문 앞에 이르게 되었다.
저승사자는 그 문을 열며
"이 컴컴한 데로만 들어가면 이승으로 나갈 수 있다. 속히 나가거라."
하면서 원님의 등을 문 밖으로 밀쳤다.
원님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은 바로 이승이었고, 자기도 이승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원님은 즉시 나졸들을 시켜 덕진이라는 아가씨를 찾으라고 명령했다. 얼마 뒤, 덕진이라는 아가씨가 어머니와 주막을 차려 살고 있으며, 인정이 많아 손님을 후하게 대접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원님은 허름한 모습의 선비로 변장을 하고, 밤에 덕진의 집을 찾아갔다.
덕진은 따뜻하게 원님을 맞이했다. 술을 달라는 원님에게 덕진은 술상을 정성스럽게 차려서 가지고왓다.
"한 잔에 두 푼씩 여섯 푼만 주십시오."
"술값이 무척 싼 편이로군. 무슨 이유라도 있소?"
"다른 집에서 두 푼을 받으면 저희 집은 한 푼을 받고, 다른 집에서 서푼을 받으면 저희 집에서는 두 푼을 받아 왓습니다."
원님은 며칠 뒤에 다시 덕진의 집을 찾았다. 원님은 머뭇거리며 말하였다.
"저, 돈 열 냥만 빌려 줄 수 있소?"
"그렇게 하지요."
덕진은 선뜻 열 냥을 내주었다.
"아니,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안 갚으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걱정 마시고 형편이 어렵거든 가져다 쓰시고, 돈이 생기거든 갚으십시오."
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원님은 돈 열냥을 받아 가지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런 것이 정말 만인에게 적선하는 것이로구나. 이런 식으로 덕진은 수천염ㅇ의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수천 냥의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덕진의 저승 곳간에는 곡식이 가득 차 있을 수밖에...'
크게 감명을 받은 원님은 며칠 뒤, 달구지에 쌀 삼백 석을 싣고 주막을 찾아갔다.
주모가 호들갑스럽게 원님을 맞이하였다.
"주모의 딸을 좀 불러 주게."
"아니, 소인의 딸은 무슨 일로......"
"해코지 하려는 게 아니니 염려 말게."
잠시 뒤, 덕진은 마당에 나와 원님 앞에 다소곳이 섰다.
"너에게 빚진 쌀 삼백 석을 갚으로 왔느니라."
그러자 덕진은 어리둥절해하며 원님을 쳐다보았다.
"하여튼 받아 두어라. 먼 훗날, 너도 알게 될 것이니라."
원님은 받을 수 없다는 덕진에게 쌀을 강제로 떠맡겼다.
원님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덕진은 영문을 몰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덕진은 어머니와 함께 쌀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의논하였다.
"나도 영문을 모르겠구나. 무슨 곡절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네가 주인이니 네 뜻대로 하여라."
그 날 밤, 덕진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내 쌀이 아니니 좋은 일에 쓰도록 하자.'
그리하여 덕진은 쌀을 팔아서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강 가에 다리를 놓기로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그 곳에 다리가 없어서 불편을 겪고 있던 참이었다.
이렇게 해서 돌다리가 만들어지자, 사람들은 그 다리를 '덕진다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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