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편지 53호(고불(古佛) 맹사성의 겸양지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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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신길순 | 등록일 | 14.01.29 | 조회수 | 171 |
<「Clean-충북교육」 청렴 편지 제53호 > 고불(古佛) 맹사성의 겸양지덕 맹사성은 고려 말기의 문신 맹희도의 아들이자 당대 최고의 명장이자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말로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최영
장군의 손서(孫婿:손녀사위)였다. 맹사성이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
제, 이제 막 군수가 되려는 자만심 가득한 어느 날, 선사를 찾아가 성
정을 베풀기 위한 자문을 구하게 되었는데, 선사는 맹사성의 큰 기대
에 미흡한“나쁜 일은 하지 말고 착한 일만 많이 하라.”는 상식적인
말만 하였다. 그런 선사의 말이 하도 못마땅하여 맹사성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찰나, 선사가“차나 한잔 하고 가시라”고 권했
다. 맹사성이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자 선사가 맹사성의 찻잔에 찻
물을 따르는데, 찻물이 차 넘치는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따라 붓는
것이었다. 맹사성이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다 적시겠다고 소리치자
선사가 일갈(一喝)했다.“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건 알면서 어
찌하여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모른단 말이오!”선사의 말
에 맹사성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 황급히 자리에서 일
어났다. 그리고는 서둘러 방을 나서려다 그만 문틀에 이마를 세게 부
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고
개를 숙이면 부딪칠 일은 없을 것이오.” 이 일을 계기로 맹사성은
자신의 알량했던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겸양지덕을 몸에 익히고 실천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맹사성은 공사(公私)의 구분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공무가 아닌 일에
는 결코 역마를 이용하지 않고, 소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의 이런 공사에 대한 명확한 구분은 먼 후대의 실학자 다산
(茶山)정약용의 저서《목민심서(牧民心書)》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
오는데, 목민관(수령)이 지켜야 할 열두 가지 기본 지침 중 두 번째
편의 〈율기(律己)〉. 즉,‘몸을 다스리는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 목민관은 몸가짐을 절도 있게 해서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 위엄이란 아랫사람이나 백성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동시에 원칙을 지키는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마음가짐은 언제나 청렴결백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청탁을 받아서는 안 되며, 생활은 언제나 검소하게 해야 한다. 집안을 잘 다스리는 것도 목민관의 중요한 덕목이다. 지방에 부임을 할 때는 가족을 데리고 가지 말아야 하며, 형제나 친척이 방문을 했을 때에는 오래 머무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는 쓸데없는 청탁이 오가고 물자가 낭비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을 절약하고 아껴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 또한 목민관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정치는 백성의 고충을 먼저 생각해야함의 도리가 있으니 그것의 유일한 방도가 곧 배려요, 장사는 그 이문을 남김에도 상도의(商道義)라는 것이 있어 이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곧 상생의 유일한 방도이다.고로, ‘배려(配慮)’와 ‘겸양지덕(謙讓之德)’은 우리 인간이 생을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같은 맥락의 아름다운 단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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