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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편지 45호(채찍 하나도 나라의 것이다!)
작성자 신길순 등록일 13.05.21 조회수 198

 

이약동은 성종 1년(1470) 8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는데,

재직 중에 관리들의 부정과 민폐를 단속하여 근절시키고,

조정에 바치는 공물 수량을 감하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준 선정을 펼쳐 칭송받았다.

 

또한 한라산 신제를 올리는 산천단이 산 정상 부근이라 제사 때가 되면 많은 이들이 동원되어 며칠씩 야영을 하며 행사를 치렀는데,

혹한기에는 동사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는 이러한 폐단을 조정에 알리고 산천단을

한라산 중턱 현재의 위치로 옮겨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그가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 때,

재임 중 착용하던 의복이나 기물들을 모두 남겨두고 떠났다.

한참동안이나 말을 타고 가다보니 손에 든 채찍이 관아의 물건이었다.

그는 즉시 되돌아가서 채찍마저 성문 누각에 걸어두고 떠났다.

 

후임자들은 이를 아름다운 일로 여겨 채찍을 치우지 않고

오랫동안 그대로 걸어 놓아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 채찍이 삭아 없어지자

제주 백성들은 바위에 채찍 모양을 새겨두고 기념하였는데,

그 바위가 바로 괘편암 (掛鞭岩)이다.

      

이후 이약동의 벼슬은 대사간에 올랐고, 한성부 좌윤과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으며 말년에는 김천에 내려와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집은 겨우 비바람을 막을 만하였고,

아침 저녁으로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훈계의 시를 지어 남겼다.

가세가 가난하여 나누어줄 것은 없고 (家貧無物得支分)

가진 것은 오직 낡은 바구니 표주박과 질그릇 뿐(惟有簞瓢老瓦盆)

주옥이 가득해도 곧 없어질 수 있으니 (珠玉滿隨手散)

후손에게 청백함을 당부하는 것만 못 하네 (不如淸白付兒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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