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효정 비문(해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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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현도초 | 등록일 | 16.06.29 | 조회수 | 288 |
보성오문삼효비(寶成吳門三孝碑): 보성오씨 세분의 효자 비문
하늘은 옛날 중국에 요왕과 순왕을 보내시어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리고 백성이 어리석지 않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또한 중국에 공자 맹자와 같은 대학자를 보내시어 사회의 기강을 세워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아 도덕은 땅에 떨어졌으며 사람들의 마음에는 인정이 없어졌다.
이때 하늘은 매우 뛰어난 효자가문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어 메마른 인심에 비를 내려주셨다. 모든 백성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효자가문은 성은 보성오씨이며 수분당 수한당 영모재공 세분의 애처로운 효도의 이야기이다.
수분당의 이름은 상건이니 보성군 현필의 16세 손자가 되며 예조판서 점의 9세손이 되신다. 수분당은 서기 1590년 선조때에 나시고 1650년에 서거(逝去)하시니 68세를 사셨다. 평생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을 마음에 새기었다. 아버지가 심한 기침으로 고생하시자 대나무로 만든 통으로 목안에 있는 가래를 빨아냈으며 소변이 나오지 않자 요도를 빨아 오줌이 나오게 하시고 대변의 맛을 보아 증세를 살피고 힘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바침으로 힘이 다시 솟아나게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무덤 옆에 초가집을 짓고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침 저녁 식사를 바치셨다. 밥을 먹지 않고 죽을 먹으며 흙바닥에서 생활을 하고 부모를 그리워하는 애통함이 정도를 넘었다. 삼년상을 치른 후에도 집안에 사당을 만들어 부모님 살아계신 것처럼 매일 문안인사를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하셨다.
수한당공의 이름은 진택이며 수분당공의 아드님이시다. 1615년에 태어나시어 1691년 돌아가셔서 77세를 사셨다. 수분당공을 낳으신 어머니 파평윤씨는 일찍 돌아가셔서 순천박씨성을 가진 새엄마를 맞아들였다. 수분당공은 새어머니를 낳으신 어머니처럼 극진히 모셨다. 부모의 제사일 되었는데 시장에 가는 길이 막혀 제사음식을 장만하지 못하고 애통해했는데 산새가 날아오고 개가 꿩을 물고 와서 제사음식을 마련하였다. 또 제사를 지내는 3일동안 개가 새끼를 낳으려하자 제사에 잘못이 생길까(부정탈까) 걱정을 하니 갑자기 개가 사라졌다가 제사를 다 지난 다음날에 낳은 새끼를 물고 들어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무덤옆 초가집에서 살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영모재공의 이름은 정기니 1660년에 나시고 1734년에 돌아가셔서 75세를 사셨다. 수한당공의 손자가 되신다. 할머니께서 병상에서 물고기 회가 먹고 싶다고 하시자 겨울에 얼음이 얼어 구할 수가 없어서 강가에서 울고 있을 때 잉어가 물구멍으로 뛰어 올라왔다. 20살에 아버지가 마비증세로 신음하실 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입에 넣어 드림으로서 며칠 동안 더 사시게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초가집을 짓고 살며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 무덤에 물기가 오래 머물지 않게 살폈다. 영모재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돌아가실 때까지 무덤 옆 초가집 즉 여막에서 사셨다.
세 분의 효성스런 행동이 임금에게 알려져 각각 정려(정려문을 내리어 표창)와 복호(세금을 내지 않게함)의 상을 내렸고 수분당공은 호조좌랑(세금을 걷는 벼슬로 정6품)을 수한당공과 영모재공은 교관(향교에서 학생을 가르칠수 잇는 자격)을 추증(돌아가신 사람에게 줌)하였다.
여기 세 분의 아름다운 효도이야기를 몇 줄의 비석에 글을 전하는 뜻은 이 땅의 후손들이 땅에 떨어진 기강을 끌어올리고 세 분의 효도를 본받아서 예절 밝은 나라의 국민으로 만들고자 하는 데에 있다. 1971년 신해(辛亥) 9월 일 건립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수분당공(守分堂公) 14代宗孫 석근(奭根) 찬서(撰書) 청주 후인(淸州後人) 눈메 한갑수(韓甲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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