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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 안내 가정통신문
작성자 *** 등록일 22.06.03 조회수 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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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

 

안녕하십니까?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2022년은 #고맙습니다 라는 주제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헌신한 국가유공자를 기억하고, 희생과 헌신에 대하여 <추모·기억>, <예우·감사> 하는 문화를 조성하고자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호국보훈의 의미와 나라사랑의 마음을 기르기 위해 6월 계기교육의 자료로 현충일, 610만세운동, 625전쟁의 의미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1

현충일(66)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순국선열(일제에 항거하다과 목숨을 바친 선조 열사)과 호국영령(나라를 지키다가 사망한 분들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지정된 법정기념일로 1956년부터 6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매년 현충일에 추념식과 참배행사, 각종 추모기념식이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되며, 학교, 단체, 가정에서 조기를 게양한다. 202267주년 현충일 추념식은 오전 10시 진행되고, 전국에 1분의 사이렌이 울려 호국영웅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또한 국가보훈처에서 전 국민이 66() 10시에 추모 묵념에 동참할 수 있도록 6610 함께해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증사진’, 시태그 (#)이벤트6610 온라인 묵념 캠페인 진행 한다고 한다.

2

610만세 운동(1926)

1920년대 학생들은 일제의 식민 교육과 민족 차별 교육에 맞서 수업 거부, 동맹 휴학등의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러한 가운데 1926년 순종이 세상을 떠나자 학생들은 순종의 국장일에 격문을 뿌리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610 만세 운동) 많은 사람이 이에 호응 하였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학생 200여명이 잡혀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다. 191931운동처럼 전국적인 만세시위로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610 만세 운동은 일제의 1920년대 문화통치의 민족분열정책에 대항하여 우리민족의 독립의지를 뜨겁게 보여준 만세시위 운동이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이 연대하여 신간회(1927)가 창립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 주었다. 엄혹한 일제 식민지배 시절에 나라의 독립을 외치는 학생들의 희생과 독립운동의 정신을 오늘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610()에는 96년 전 일제에 항거해 자주독립의 의지를 펼쳤던 만세운동을 기념하는96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식이 올해 처음 정부주관으로 거행된다.

국가보훈처 나라사랑배움터 610 만세 운동 참고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VL3NwJPD9Iw)

(44)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리다! - 여기, ()적인 여행 6·10만세운동 편 - YouTube

3

625전쟁(1950.6.25.~1953.7.27)

1945815, 일본의 패전과 함께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각각 미소 군대를 주둔시키고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를 세우려고 대립하였다. 1946년 좌우합작운동, 1948년 남북협상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은 있었지만 실패하고, 남한에는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 북한에는 19489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남한과 북한에 각기 다른 체제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단은 현실이 되었다.

1950625일 북한군의 전면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에 국군은 3일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겼고, 낙동강 유역까지 후퇴하였다. 그러자 미국 주도로 열린 유엔안전보장 이사회는 유엔군 파견을 결의하였고,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뒤집은 뒤 압록강 유역까지 진격하였다. 전쟁은 북한군의 요청을 받은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다시 전세가 뒤집어 졌다.(14후퇴) 전쟁은 38도선일대에서 국군과 공산군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장기화 되었다. 유엔군과 공산군은 1953년 휴전협정을 체결(1953.7.27. 국경설정, 포로송환 등)하면서 전쟁은 끝이났다. 3년여 동안 전개된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고 10만이 넘는 전쟁고아, 1천만명이 넘는 이산가족, 산업시설 파괴, 남북한 군인 200만명, 민간인 280만명, 유엔군 15만명, 중국군 90만명등 수 많은 인명피해와 우리 민족에게 전쟁의 상처를 남겼다. 2021년 현재에도 분단의 상처와 이산가족의 아픔은 진행중이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과제로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와 안전을 위한 평화적 통일이 모색되어야 한다.

2022625()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6.25전쟁 제21주년 행사 전국 92개 지역에서도 일제히 개최될 예정이다.

국가보훈처 나라사랑배움터 625전쟁 참고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_HTuf2bFbpw)

(44) 6.25전쟁, 잊을 수 없는 상처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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