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버지의 구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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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차희 | 등록일 | 12.09.21 | 조회수 | 206 |
아버지의 구두
“진리 엄마, 나 이제 구두 한 켤레 새로 사야 할 것 같은데…….” 출근을 하시려고 한켠에서 구두를 신으시던 아버지께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침마다 아빠의 구두를 닦아드리는 진리도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알았어요.” 힘없는 목소리로 한숨을 쉬던 엄마는 조용히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나도 진작부터 새 구두를 한 켤레 사주고 싶었는데, 영 형편이 나아지질 않네요.” 수돗물 소리에 섞이어 크게 들리진 않았지만 엄마는 이내 걱정스런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엊그제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천만원이나 올려 달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엄마는 그 날 이후 웃음을 잃으셨습니다. 조그마한 회사에서 일을 하시는 아빠의 월급으로 천만원이라는 큰 돈을 모으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제도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는 혼자 안방 화장대 앞에 앉으셔서 통장들만 열심히 넘기면서 한 숨을 연거푸 쉬고 계셨고,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진리의 누나는 집주인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도 엄마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이른 저녁 시간에 시장을 보러 가셨습니다. 생선 가게 앞을 지나치던 엄마는 엊그제 진리가 식사 시간에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엄마, 우리 집은 매일 풀만 먹어요? 나 갈치조림 먹고 싶은데…….” 생선 가게 앞에서 한참을 머무르던 진리 엄마는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습니다. “아줌마 이 갈치 한 마리에 얼마에요?” “응, 그거 8,000원이야. 제주도 은갈치인데 아주 싱싱해. 두 마리 줄까?” “아니에요. 그냥 한 마리만 주세요. 그리고 덤으로 저기 저 고등어 한 마리만 넣어줘요.” 생선 가게 아주머니는 혼자 투덜투덜 하시면서도 고등어까지 한 마리 챙겨 주셨습니다. 시장을 보러 나오면서 가져온 돈 2만원은 어느 새 동전 몇 개만 남아 주머니에서 댕그랑거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진리네는 모처럼만에 집안 가득 구수한 생선 조림 냄새가 나고, 식탁엔 웃음꽃이 넘쳐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진리는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빠의 구두를 열심히 닦았습니다. 오래된 낡은 구두여서인지 아무리 정성을 들여서 닦아도 빛이 나질 않았습니다. 굽도 너무 많이 닳고 낡아있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진리가 기특하구나. 다녀올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출근을 하려던 아빠에게 엄마는 총총걸음으로 다가와 봉투를 건넸습니다. “여보, 이걸로 오늘은 퇴근길에 구두 한 켤레 사신고 와요. 내 눈엔 도통 맘에 드는 게 없어서……. 당신이 잘 골라서 사 신고 와요.” 그런데 그날 퇴근을 하고 오신 아빠는 아침에 신고 간 그 구두와 비슷한 구두를 신고 오셨습니다. 손에는 구수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통닭 한 봉지가 들린 채로 말이죠. 아빠는 여느 날처럼 버스에서 내려 곧장 회사로 향했는데 회사 입구 조그만 골목 어귀에 구두병원이라는 간판이 달린 가게가 눈에 띄었습니다. 머뭇거리다가 가게로 들어간 아빠는 수선이 가능하다는 아저씨의 말에 퇴근길에 찾기로 하고, 슬리퍼로 바꿔 신고 출근하셨습니다. 종일 슬리퍼를 신고 회사에서 근무하기가 좀 쑥스럽긴 했지만, 퇴근길에 다시 만난 구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새것처럼 변해있었습니다. “밑창이랑 굽 갈고, 터진데 다시 꿰매고 했으니 만오천원만 주시오.” 아침에 엄마가 건넨 봉투에는 육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기분 좋게 만오천원을 건네고 오시던 아빠는 집근처 통닭 가게에 들러 통닭 한 마리를 사가지고 오시는 여유도 있으셨던 것입니다. “당신도 참, 이 기회에 새 구두 사서 신으라니까. 언제 내 마음이 바뀔지 몰라요. 모처럼 큰마음 먹고 준건데…….” “알아요. 그래서 더 못 쓴거라우. 아직도 일이년은 거뜬히 신을 수 있다는 구려. 내가 워낙 얌전히 신발을 신어서 말이오.” 그날 저녁 진리네 가족은 모처럼 행복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통닭을 먹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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