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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화약품은누가만들었나
작성자 강준길 등록일 10.11.25 조회수 111
화약이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있으나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아래 두 글을 읽어보면 약간의 궁금증은 풀릴 겁니다.


* 고대중국에서 화약의 발명은 연단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소위 연단이란 바로 사람들이 광물질을 사용하여 제련해내려고 힘써 노력했던 장생불사약이다. 이것은 본래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연단을 통해 많은 제련 경험과 화학 지식을 누적하게 되었다. 그뒤 사람들은 초석(=질산소다) 유황 그리고 숯을 이용하여 일정 비례에 맞춰 일종의 흑색 화약을 제조해내게 되었다. 흑색 화약의 제조방법은 남송 때 아랍으로 전해졌고 그뒤 다시 유럽으로 전해졌다. 화약의 발명은 군사 공업과 경제 발전을 촉진시겼다.

- http://users.sinology.org/pendar/chinese/reading/cr05/note/05....


* 東西古今(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한결같다. 천하를 손에 넣은 秦始皇(진시황)은 영화를 천년 만년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徐福(서복)의 건의로 童男童女(동남동녀) 3000명을 동해의 三神山(蓬萊山, 方丈山, 瀛洲山)에 보내 不老草(불로초)를 구하게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환갑도 못 넘긴 50세의 나이로 夭折(요절)하고 말았다. 그 뒤 西漢(서한)의 漢武帝(한무제)도 晩年(만년)에 神仙術(신선술)에 미혹되어 국고를 탕진했지만 그런대로 장수(70세)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비록 전설이기는 하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은 彭祖(팽조)는 700세나 살았다니 인간의 수명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나라는 어떤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단군이 藏唐京(장당경)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한다.

진시황과 한무제 두 제왕의 죽음으로 중국 사람들은 불로초에 대한 허망한 꿈은 버리게 되었다. 대신 國庫(국고)를 탕진할 필요 없이 매우 경제적으로, 그것도 아주 간편하게 不老長生(불로장생)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丹藥(단약)의 제조인 것이다. 중국 東漢(동한)말에 출현한 道敎(도교)는 煉丹術(연단술)에 불을 지폈다. 부적과 약물을 통한 災厄(재액) 방지와 만병통치를 구호로 내걸면서 연단술은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이후 도가의 養生術(양생술)에는 아예 불로장생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지게 되었으며 晉(진)의 葛洪(갈홍)같은 이는 服藥(복약) 僻穀(벽곡) 導引(도인)과 같은 실천 방법까지 제시하게 된다.

丹藥(단약)의 재료는 놀랍게도 水銀(수은), 유황, 납, 丹砂(단사), 砒霜(비상), 초석, 운모 및 약초가 사용되었는데 그 면면을 보면 의아함을 넘어 섬뜻한 느낌마저 받게 된다. 실제로 1965년 南京 象山(상산)에서 수백 개의 단약이 발견된 적이 있다. 단약이 극성했던 동진시대의 王氏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었는데 성분 조사 결과 역시 수은이 60.9%나 되는 것으로 판명됐다. 그렇다면 단약도 기실은 夭折藥(요절약)이 아닌가. 실제로 역대 수많은 천자들이 단약을 잘못 먹고 不歸(불귀)의 客(객)이 되었다. 당나라의 경우 太宗을 비롯 무려 6명의 천자가 단약을 먹고 죽었다.

연단술이 해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산물로 화약이 발명된 것이다. 그 뒤 중국의 연단술은 아랍을 거쳐 12세기에는 유럽에 전파되어 근대 화학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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