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Zenodot Verlagsgesellschaft mbH출처: wikimedia commons이미지갤러리
제작배경 및 미술사적 의의
반 고흐는 인물화를 즐겨 그린 화가였다. 동생 테오(Theodore van Gogh)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종종 인물화에 대한 언급을 했다. 1882년 7월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인물화를 통해 기이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마음속엔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를 보여주겠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편지에 적은 것처럼 반 고흐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또한 그는 농부이면 농부답게 매춘부이면 매춘부답게 모델이 가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그들의 삶, 생각, 개성을 화면에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반 고흐는 현장에 직접 나가 사람들을 관찰하지 않고 상상력을 이용해 그린 인물화를 비판했다.
특히 그는 아카데미의 정형화된 인물화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1885년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반 고흐는 “아카데미의 인물화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더 이상 고칠 곳도 없고, 실수 하나 없이 매끄럽게 그려졌지. 그러나 그런 그림은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끔 이끌어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반 고흐는 그들의 그림은 기술이나 형식에선 완벽할지 모르나 모델의 개성과 그들에게서 풍기는 느낌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반 고흐가 좋아하는 인물화는 램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가 그린 것들이었다.
1885년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램브란트가 그린 매춘부여인의 그림을 극찬하며 램브란트는 마치 마술사와 같이 인물을 표현한다고 했다.
반 고흐는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초상화를 그렸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많이 담은 화가로 유명한데 여기엔 현실적 이유 또한 있었다. 사람들이 선뜻 그의 모델이 되길 꺼려했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남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사람들은 말하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야. 램브란트가 그린 자화상들은 그가 자연을 관찰한 풍경화보다 더 많아. 그 자화상들은 일종의 자기고백과 같은 것이야.’라고 적혀있다. 반 고흐의 자화상은 마치 램브란트의 후기 자화상처럼 독특한 자신의 심리상태가 표출돼 있다.
표현기법
스스로 색채주의자라 칭했을 만큼 색 배치에 관심 있던 반 고흐는 초상화에서도 어김없이 색채 실험을 하고자 했다. 그가 여동생에게 1887년 가을에 쓴 편지에는 “작년에는 회색, 분홍색, 부드럽거나 환한 녹색, 밝은 청색, 보라색, 노란색, 오렌지색, 찬란한 빨간색 외의 색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꽃 그림만을 주로 그렸다. 그 덕에 올 여름 아시니에르에서 풍경화를 그릴 때, 과거보다 더 많은 색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것을 초상화에 적용해보려고 한다.”고 적혀있다. 1888년 제작된 <자화상>은 크게 세 가지 색 면이 배치돼 있다.
배경에 쓰인 쑥색, 옷을 구성하는 차가운 푸른색, 얼굴과 목 부분의 따뜻한 주황색은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화면 속 보색대비효과로 인해 화가의 얼굴은 한층 도드라져 보인다. 작품의 색채대비뿐 아니라 각각의 색 면을 구성하는 색 선들 또한 주목할만한데 얼굴을 표현하는데 쓰인 사선방향의 선들과 배경의 수직의 색 선, 푸른 옷에 쓰인 꿈틀대는 선들은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런 선들은 반 고흐 그림에서 종종 등장하는 작가 고유의 특성이다.
감수
- 김일기/서울대학교 강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미술사전공)를 졸업했다. 『1900년대 미술사』(세미콜론, 2007년)를 공역했으며, 서울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자화상 - 빈센트 반 고흐 (wikimedia commons, 위키미디어 커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