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보는 삼국지'를 읽고 (4-5 21번 최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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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성호★ | 등록일 | 09.04.09 | 조회수 | 202 |
유비(劉備)는 관우(關羽) 장비(張飛) 와 함께 의형제를 맺었다. 관우는 무기장수에게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고 장비는 이세상에 없는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장비는 고민고민 생각하던 중 구렁이를 보았다. 그래서 장비는 창을 구렁이 모양으로 해 달라고 하였다. 장수가 못 한다고하자 장비는 바위 사이에 창을 넣고 2~3번 흔들었다. 땅은 많이 흔들렸다. 창을 꺼내 보니 창이 구렁이 처럼 구불구불 거렸다. 그래서 그 창을 장팔사모(腸捌巳矛)라 하였다. 그리고 몇년이 지나고 공명(孔明)을 만났다. 시호 충무(忠武). 낭야군 양도현(琅句郡 陽都縣:山東省 沂水縣) 출생. 호족(豪族) 출신이었으나 어릴 때 아버지와 사별하여 형주(荊州:湖北省)에서 숙부 제갈 현(諸葛玄)의 손에서 자랐다. 후한 말의 전란을 피하여 사관(仕官)하지 않았으나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다. 207년(建安 12) 위(魏)의 조조(曹操)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劉備:玄德)로부터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로써 초빙되어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進言)하고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를 맺었다. 이듬해, 오(吳)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익주(益州)를 유비의 영유(領有)로 하였다. 그후도 수많은 전공(戰功)을 세웠고, 221년(章武 1) 한(漢)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 유비는 방통도 만나 같이 살게 되었다. 어느날 방통이 위연을 시켜 유장과 유비 앞에서 칼춤을 추게 하였다. 이를 이상하게 느낀 부하는 칼춤을 이용해 유장님을 살해하려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유장이 유비에게 진짜냐고 물었다. 그 때 방통이 나타나 "유장님은 늙어서 촉나라를 다스릴 힘이 없습니다. 우리 주군에게 촉나라를 다스리게 하십시요." 유장은 절대로 못 주겠다 하며 화가 나 돌아갔다. 대군을 이끌고 올 걸 안 방통은 유장을 처치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유비는 위연에게 유장을 해치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장은 벌써 간 뒤였다. 화가 난 유장은10만 군사를 이끌고 유비 진영으로 처들어갔다. 유비군은 퇴각하다 낙봉파까지 밀려났다. 방통을 찾고 있던 유비는 방통이 말이 부실하다며 바꿔 타자고 하였다. 유비는 유쾌히 허락하였다 그런데 유장이 백마를 탄 방통이 유비인줄 알고 쏴 죽였다. 방통이36세로 떨어진 계곡은 낙봉파였는데 봉황이 떨어지는 언덕이란 뜻이다. 방통의 또 다른 이름은 봉추였다. 유비는 방통이 자기 대신 죽으려고 말을 바꿔탄 줄 알고 크게 슬퍼했다. 이 소식을 듣고 공명 장비 조자룡과 함께 유비를 구하기로 하였다. 공명은 3군으로 나누어 공격하였다. 어쩔수 없이 유장도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유비 말을 바꿔 타 방통이 죽은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유비도 방통을 잃어 슬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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