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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 - 꿀벌의 일과 사랑
작성자 정덕화 등록일 11.10.13 조회수 235

 

꿀벌의 일과 사랑

 

바쁜 이들에게 길어진 해도 짧게만 느껴집니다. 그런 이들에게 엘니뇨가 주는 작은 선물이 있습니다. 요즘 하루는 평소보다 길어요. 엘니뇨로 인해 강해진 서풍이 지구의 자전속도를 늦췄기 때문입니다. 겨우 1만 분의 1초 정도이지만 하루가 길어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맘때쯤 바쁘기로 친다면 사람이 꿀벌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꽃 꿀과 꽃가루 따 모으기와 번식을 위해 활동이 왕성한 시기입니다. 꿀 1㎏을 만들기 위해 꿀벌은 총 16만㎞ 거리를 비행하며 1천만 송이의 꽃을 들락거려야 합니다. 그 일은 모두 일벌의 몫입니다. 가을에 태어난 일벌이 이듬해 봄까지 살아남는데 비해 여름철 일벌의 수명이 약 40일에 그치는 데서 노동강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꿀 따기는 일의 한 부분일 뿐이죠. 일벌은 태어나자마자 집안청소부터 시작합니다. 11일 째까지 애벌레 먹이주기를 하고 이어 17일 째까지 밀랍 생산, 둥지수리, 사체처리, 음식물 저장, 날개를 이용한 환기 따위에 매달립니다. 그후 3일 동안 경비노릇을 한 뒤 22일 째부터는 마침내 외근에 나섭니다. 건축가, 영양사, 간호사, 공조기술자, 장의사, 군인 노릇을 해야만 꽃을 찾아 나설 자격이 주어집니다.

여름철 벌통 하나엔 여왕벌 1마리와 수벌 수천 마리를 포함해 약 4만 마리의 벌들이 웅웅댄답니다. 일벌의 노고는 바로 집단 유지비용입니다. 작은 도시 만한 인구를 먹여 살리고 수많은 잡무를 처리하기 위해 벌들은 일을 철저히 나눠 맡습니다. 집단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춤과 저주파 노래, 그리고 냄새가 동원됩니다. 수벌은 일벌과 달리 빈둥거리며 여왕벌과의 화려한 혼인비행 이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러워할 건 없어요. 수컷의 비애가 있습니다. 수벌은 무성생식으로 태어나고 따라서 반쪽 유전자밖에 없습니다. 산란관이 변한 침이 있을 리 없고, 반쪽 벌인 셈입니다. 수벌의 절정은 혼인비행이고 여왕벌을 따라 하늘 높이 올라간 10-20마리의 수벌이 짝짓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생식기가 몸 안에 있는 수벌은 수정을 위해 복부를 파열시킬 수밖에 없어 곧 죽는답니다. 혼인 비행 뒤 수벌은 모조리 벌통에서 쫓겨납니다. 여왕벌의 삶도 행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혼인비행에서 평생 쓸 정자를 배속 자루에 저장한 여왕벌은 수명이 다하는 3-5년 동안 벌통에 갇힌 알 낳는 기계일 뿐입니다. 한창 번식기인 여름에 여왕벌은 하루에 자기 몸무게에 해당하는 2천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최근 도심에서는 꿀벌들이 분봉을 해 소방대가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벌의 숫자가 늘어나거나 벌통이 비좁아 여왕벌이 내뿜는 신호물질인 페로몬 농도가 옅어지면 일벌들은 새로운 여왕벌 애벌레를 기르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새로운 집을 찾아 떠나는 벌은 새로 태어난 처녀여왕이 아니란 점입니다. 늙은 여왕이 절반 가량의 나이든 벌을 데리고 떠나는 것이어서 ‘새 술은 헌 부대에’ 담는 격입니다. 벌들은 여왕벌의 페로몬 냄새를 중심으로 나뭇가지에 공처럼 뭉쳐 있다가 정찰병이 물색한 새 둥지로 향합니다.

분봉할 때 벌들은 가장 온순해집니다. 웬만하면 쏘지도 않지요. 이사를 대비해 집을 떠나기 전 배가 터지도록 꿀을 먹기 때문입니다. 마치 연기를 쏘인 벌이 순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로 숲에 사는 벌은 오랜 진화과정을 통해 산불의 무서움을 알고, 따라서 연기를 쏘이면 불이 난 줄 알고 둥지를 버릴 것에 대비해 꿀부터 찾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기치 않은 분봉 사태가 났을 때 외국 경찰은 양봉가에게 연락을 합니다. 양봉가는 자루에 벌들을 간단히 쓸어 담아 새로운 벌통에 이식하면 상황 끝입니다. 소방대가 출동해 사람과 벌을 놀라게 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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