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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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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에 대하여
작성자 김의식 등록일 12.06.14 조회수 180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 전역에서 우리 대한민국을 전면 기습 공격했습니다. 소련의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북한군이 한반도를 공산화하기 위해 남침을 감행한 것입니다.

 북한군은 6․25침략을 위해 철저하게 군사적 무력침략 준비를 한 다음 7개의 보병사단, 1개 기갑사단과 수 개의 독립연대로 구성된 13만 5천여 명의 병력과 각종 포대와 2백 80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침략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북한 공산군 앞에서 그저 밀려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우리 정부는 유엔군의 지원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19950년 9월 28일 서울을 다시 되 찾게 되었습니다. 1950년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하고, 20일 맥아더 원수는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에게 한만 국경선까지 조속히 진격할 것을 명령하여 우리는 남북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 10월 25일 생각지도 않았던 100만 명의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하여 피리를 불고 꽹과리를 치며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 앞에서 유엔군은 11월 26일부터 다시 후퇴를 시작하였고,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을 다시 북한공산당에게 빼앗기고 정부는 또 부산으로 임시수도를 옮겼습니다.

 어려움 끝에 유엔군과 국군들을 재 정비한 우리 연합군의 북진으로 서울을 재탈환한 우리는 적(북한군과 중공군)들과 38선에서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북한 측의 휴전협정 제의를 미국이 수락하여, 우리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어 전쟁은 중단되었으나 우리가 바라던 한반도 통일의 꿈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6ㆍ25전쟁을 교훈삼아 다시는 이 땅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도록 함께 노력하면서 평화통일을 위해 우리들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공부하며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키는 길만이 우리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지름길을 만들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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