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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자매학교를 다녀와서-1학년 이재덕
작성자 이재덕 등록일 05.09.29 조회수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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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자매학교를 다녀와서

                                                                                              대제중학교 1학년 이재덕

 8월 2일 평소보다 일찍, 오전 6시에 기상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극부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밥도 평상시와 같이 볶음밥에 수박주스, 빵과 잼이었다. 평소와 같은 메뉴라서 질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니 오전 7시가 되었다. 원래 우리가 일어나던 시간인데 이제 체험학습을 위해 극부로 출발하였다. 극부에 가기까지 약 3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면서 극부까지 출발했다, 나도 잠을 잤다. 그런데 새로운 가이드 선생님이 두 분 오셨다. 그 두분께서 자기 소개를 하시고 하다 보니 시간이 3시간이 다 되었다. 제일 먼저 극부의 공묘를 갔는데, 공묘는 공자의 옛집을 사당으로 삼고, 황궁의 규격에 맞게 건설되었으며, 중국 3대 고건축물 중의 하나로서 세계 건축물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공묘를 보니 형세가 웅장하며, 짜임새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것을 보니 중국에서 공자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공묘의 안을 살펴보고 나니 11시가 되었다. 11시가 되자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새로운 지방의 새로운 음식을 먹으러 갔다. 역시 요성과 조금 떨어진 지방이라 그런지 메뉴가 조금 색달랐다. 기름이 너무 많아서 느끼했고 맛은 한국 사람의 입맛에는 조금 맞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오후 12시 30분에 새로운 호텔에 왔다. 호텔의 입구는 동호 호텔보타 나아 보였지만 방에 가보니 동호 호텔과 비슷했다. 다른 방에 놀러가서 해리포터 영화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다가 약속된 집합시간에 조금 더 쉬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극부 체험을 위해 나왔다. 또 다시 버스를 타고 공부로 출발 하였다. 3시 15분에 공부 입구에 도착하였다. 공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표를 내고 공부 안으로 들어갔다. 공부는 손님을 대기하는 곳이 있는데, 그 곳에 말도 함께 기다리는 곳이 있었다. 그 바로 앞에 문 하나와 두 갈래 길이 있는데, 문은 황제가 지나가는 곳이고 왼쪽 길은 무인이 오른쪽 길은 문인이 갔던 길이었다. 그 길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면 공자의 자손이 사무를 보던 곳이 있는데, 웅장하다고 느꼈고 그 옆에는 공자가 76대 자손에게 장수의 壽(수)자를 써 주었다고 한다. 더 안쪽에는 집 한채가 있었는데 그 앞에는 태호라는 곳에서 운반한 돌이 있었다. 그 돌을 집 앞에다가 세운 이유는 집안일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하라고 세운돌이었다. 또 간판 같이 무언가가 세워져 있는데 그 안에는 육대함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이 글이 적혀있게 된 계기는 건륭황제의 딸과 공자의 76대 자손이 결혼을 했는데, 그 둘에게 행복을 바라면서 육대가 사탕을 물은 것과 같이 달콤히 지내라는 뜻으로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글을 보니 건륭황제가 자신의 딸을 끔찍하게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곳을 지나고 나면 아주 좁은 골목이 있는데 이 곳을 지나면 피난소가 보인다. 피난소 앞의 그 좁은 길은 도적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길이고 피난소의 유명한 음식을 옮기던 기계가 있었으나 박물관에 기부했다고 한다. 피난소는 움직이는 기계로 아는 사람은 위로 올려 보내고 모르는 사람은 아래로 내려 보냈다고 한다.  이 곳은 공자의 식구들이 일주일 동안 먹을 식량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는 공자의 76대 자손과 그의 식구들이 살았던 곳에 가보았다. 그 입구에는 얼핏 보면 용같이 생긴 괴물이 있는데, 그 괴물은 욕심이 무척 많이 8선의 보배들을 모두 빼앗고 태양까지 삼키려다가 죽게 된다. 이것을 보고 공자의 자손들은 욕심을 버리자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더 앞으로 가면 건륭의 딸의 방이 나오는데, 그 안에 거울과 꽃병이 있다. 거울은 조용한 것을 뜻하고 꽃병은 평온한 것을 뜻한다고 하는데, 마치 가족의 평화로움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 방 앞에서 통역사 선생님이 공자의 76대 자손의 부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1대 부인은 일찍 사망하였다. 2대 부인은 아이를 낳았으나  아이가 일찍 죽었다. 또 질투심이 많아 공자의 자손이 나가면 또 다른 부인을 사귈까봐 하인을 3대 부인으로 삼게 한다. 마지막 3대 부인은 하인출신인데 딸 2명과 아들 1명을 낳고 둘은 대만에 가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곳을 지나 앞으로 지나가니 십리향이라는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의 향이 십리나 전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향이 십리나 전해지면 약 4km를 가는 것인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옆에 시녀광이라고 공자의 시녀들이 지내던 곳이 있었는데 그 곳에 공자의 자손들의 그림이 있었다. 또 앞으로 쭈욱 가다 보니 매우 큰 화원이 있었다. 그 곳에 중약이라는 중국의 약재가 있었는데 약 1000년을 묵었고 나무의 개수가 큰것이 5그루, 작은 것이 6그루라 그 둘을 자릿 수를 생각하지 않고 붙여 놓으면 56이므로 중국의 민족의 수를 대표하는 나무로 불렸다. 오후 4시 25분 공부 유람을 마치고 공림으로 또 출발했다. 잠시후 우리는 공림에 도착했다. 공림은 공자의 후손들이 죽은 후에 묻어진 곳이다. 공자의 자손은 지금도 이 곳에 묻힐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밟고 있는 돌은 공자의 후손일 가능성도 있다. 그 곳에는 양쪽에 나무가 있는데 85개 76개가 있다.85개는 맹자의 나이 76개는 공자의 나이이, 그들이 죽었을 때의 나이다. 그리고 앞으로 가면 주수교라는 다리가 나오는데 앞에 새겨진 비석을 보면 년도가 다르다. 지금까지는 주수교 건설을 하는 도중에 돈이 부족하여 서로 다른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 된다. 그리고 주수교 앞에 돌기둥 2개가 있는데 중국 역사에 따르면 이 돌기둥을 지나면 천당이라고 한다. 조금 더 앞으로 가면 말처럼 생긴 동물이 있는데, 로단이라는 동물이다. 이 동물은 세계의 통역사로 불리고 머리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로단의 골을 만지고 옆으로 돌아가 보니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그 비석은 공자가 죽었을 때,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 자공이 안와서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후세에 공자의 제자들이 만든 비석이다. 이 비석은 ‘자공손식비석’ 인데 자공이 없으면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뜻이였다. 그 옆에는 묘가 세 개 있는데, 공자와 아들, 손자의 순서대로 묘를 지었는데 그 이유가 ‘공자가 아들을 데리고 손자를 안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려고 그런 것이다. 공자의 묘 앞에는 ‘문성지성문현왕’이라는 글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공자가 가장 큰 성공을 많이 했고, 지향이 높은 문인이란 뜻인데, 사실 비석에는 ‘왕’자는 돌 밑에 감추어져 있다. 통역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왕이 밑의 ‘왕’자를 보면 시기를 할까봐 감추어 놓았다고 한다. 모든 유람을 마치고 저녁 식사 역시 점심 식사를 하던 곳에서 먹었다. 저녁을 모두 먹고 난 후에, 오후에 들렀던 호텔에 가서 잠을 잤다. 8월 3일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태안으로 갔다. 태안으로 가서 태산을 가는데 태산은 태안의 북쪽에 있으며, 태안과 함께 2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태백, 두보 등의 시인들이 왔다갔으며, 오악산 중의 유명한 산 중의 하나이다. 신선들이 많이 다녀갔다는 산으로 불리며, 높이는 약 1000m라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차를 갈아타고 태산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 조를 확인하고 조끼리 태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태산을 올라가는 동안 한국의 꼬마아이를 보았는데 가뿐히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조금 힘들긴 했지만 열심히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우비를 쓰고, 또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엄청 나게 힘들었다.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내려갈 줄 알았는데, 아직 올라갈 곳이 더 있다고 해서 잠시 기운이 쭉 빠졌다. 또 열심히 올라가서 마지막 도착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그곳을 둘러보았다. 걸어 내려오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 왔는데 마침내 케이블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6명이서 한 곳에 타고 내려왔는데, 밑을 보니 우리가 올라갔던 곳이 보였다. 엄청나게 긴 길이었다. 오늘은 태산 호텔에 가서 오랫동안 휴식을 취한 뒤 저녁을 먹고 쇼핑을 갔다. 그곳을 둘러보고 난 뒤 먹을 것을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피곤한 하루여서 그런지 금방 잠이 들었다.  8월 4일 오늘은, 대묘를 가는 날이다. 대묘는 공묘와 비슷한 구조라고 하셨다. 안을 들어가 보니 왼쪽은 나무 오른쪽은 꽃을 심었다. 이곳은, 9.8 평방미터이고 태산 신을 모시는 곳 중에서도 가장 밑에 있는 곳이다. 이곳은 모두 동으로 만든 사당이 있는데, 옛날에는 창문이 있었지만 청일 전쟁 때 일본이 창문을 가져갔다고 한다. 또 앞으로 가면 아버지와 어머니 나무가 있는데, 아버지 나무는 잎만 열리고 어머니 나무는 잎, 열매가 모두 열려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앞에는 나무가 있는데 한 대신이 왕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하자 그것을 막으려다가 자살을 했는데 그가 죽어 영혼이 한 나무에 들어갔는데 그 나무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앞에 ‘이신’이라는 사람이 세운 비석도 있다. 또 그곳에 한 무제가 약 1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은 5그루의 나무만 남아 있다. 대묘를 모두 구경하고 나서 제남으로 갔다. 제남에 가서 보투샘이라는 샘을 구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투샘은 전형적인 카르스트천이라고 한다. 제남에는 샘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 그 앞으로 가면 소옥샘이라는 샘이 있는데, 리청조라는 사람이 목욕을 했던 곳이다. 옥이란 말은 여자를 대표하는데, 리청조가 지은 시가 ‘소옥’이라고 한다. 또 리청조는 유명한 시인인데, 중국에서 ‘일대시인’이라고 불린다. 그 다음에 바로 앞에 있는 천섬 광장에 가서 몇 가지를 구경하고 다시 요성으로 떠났다. 몇 시간을 차로 달려 요성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마침내 2박 3일의 긴 유람을 끝냈다. 2박 3일간의 투어로 우리나라의 약 44배의 땅을 가지고 있고 인구가 우리나라의  약 25배정도 되는 중국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고 왔지만 중국은 문화와 역사가 길어 이런 역사적인 기록들을 남겨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잘 보존 해 놓은 것이 너무 좋았고,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그 나라에 대한 문화와 생활을 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온다면 다시 그 나라에 대해 미리 사전 조사를 한 후에 재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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