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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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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보다 아이행복, 별난부모 이야기
작성자 이용모 등록일 13.11.20 조회수 912
 

기사 내용

요즘의 교육 풍토를 떠올려보면 행복한 부모는 있으나, 행복한 아이는 없다. 이것은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좋은 대학에 갈 것이고 그것이 곧 성공이라 여기는 부모들의 이기적인 교육관에서 기인한다. 성적이 최상위권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렇지 않은 부모들보다 여전히 행복하다 여기고,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 자녀의 성적에 목매다시피 사교육 열풍에 일조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기계적으로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아이들의 현실은 어떤가. 과연 부모가 느끼는 것만큼 아이들도 행복할까? 이처럼 이질적인 동상이몽은 결국 불편한 행복을 낳을 뿐이다. 아이와 부모 모두 같은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교육, 이제는 그 진실한 행복 찾기가 절실한 때다.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특별한 부모들의 이야기
당신의 아이는 진짜 행복한가요?

 

공부 스트레스 유발자, 그 이름은 부모

지난해 EBS <다큐프라임-마더쇼크 >가 방영된 후 엄마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지금까지 숭고하게만 여겼던 모성의 숨은 실체를 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관점에서 집중 조명한 결과가 가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시선을 끈 대목은 '한국 엄마들의 특별한 뇌 반응'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 엄마들의 뇌 속에 자리 잡은 비교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 초등학교 3, 4학년 자녀를 둔 한국 엄마 10명과 미국 엄마 10명을 대상으로 '동서양 모성 비교실험'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에게 뒤섞인 글자 퍼즐을 주고 그것들을 재조합해서 단어를 완성하는 과정을 관찰하도록 했다. 단, 양쪽 엄마들에게는 동서양 아이들의 어휘력을 테스트하는 실험이라고 말한 다음, 총 3개의 단어를 제시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문제를 잘 풀지 못했을 때 동서양 엄마들의 반응을 비교 관찰해보았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단어를 맞추지 못하자 이내 답답해하더니 단어의 앞뒤를 바꾸라며 힌트를 주다가 급기야 어떻게든 답을 맞힐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심지어 실험 진행자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아이 대신 단어 퍼즐을 맞추거나 아예 정답을 말해주기까지 했다. 반면 미국 엄마들은 아이가 문제를 푸는 내내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이가 어려워하자 생각해볼 수 있는 힌트를 약간 주긴 했지만, 아이가 정답을 물어보자 "가르쳐줄 수 없다"며 결정적인 대답을 거부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아이는 결국 스스로 정답을 맞혔다. 한국 엄마들과 다르게 미국 엄마들은 아이가 테스트를 받을 때 특별히 개입하지 않았고, 아이가 문제를 풀지 못해도 격려해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모습을 보였다.

EBS 김광호 PD가 <60분 부모 >, <아이의 밥상 >, <마더쇼크 >등 남다른 시각으로 자녀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의구심에서부터 출발했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죠. <마더쇼크 >에서 한국 엄마들과 미국 엄마들의 성향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는데, 거기서 그런 느낌을 특히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미국 엄마들이 아이들을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키운다는 점만큼은 한국 엄마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이나 아이의 성공 측면에서 보면 많은 부모들의 DNA 속에는 '상대비교'라는 절대 키워드가 깊이 박혀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더 잘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역할을 내가 해야만 한다'는 식의 생각이 지배적이죠. 심지어 '내가 아이의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고, 내가 도와주면 내 아이가 남보다 더 앞서 나갈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그것이 곧 나의 행복'이라 여깁니다. 제가 <마더쇼크 >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화두는 바로 이런 생각에 대한 고찰입니다. '아이에게서 좀 떨어져라. 아이를 바라볼 때 여유를 가져라. 그것이 진정으로 부모와 아이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생각입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입니다. 다른 부모들이 고민하는 것처럼 저도 끊임없이 고민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존중해주는 마음이 밑바탕이 되어야 아이 스스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고, 그것이 곧 아이들에게 진정한 행복감을 주는 길이죠."

'내 아이는 반드시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점점 더 불행해지게 마련이다. 남과 비교하면 할수록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공부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은 채 살아가게 된다. 이 시점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아이의 행복이고 부모의 행복인지를. 이에, 자녀의 공부와 성적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갖고 있는 부모들을 만나 진정한 행복 찾기 비법을 들어보았다.

 

- 김광호 PD

case 1
박용두 변호사의 특별한 교육 비법
"아들아,아빠도 꼴찌였단다!"

 

"작년까지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3 생활을 했어요."

박용두 변호사의 둘째 아들 경담 군(20)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치르는 여느 수험생들과 달리 '행복한 아이', '행복한 고3'이었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치열한 입시전쟁 속에서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수험생이라니, 실로 그 내막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비결은 5수 끝에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사법연수원 시절에도 꼴찌를 일삼았다는 꼴찌 변호사 아빠의 특별한 교육 마인드였다. 박용두 변호사는 얼마 전 출간한 저서 《아들아, 80점만 맞아라》를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공부의 노예가 되지 말고 행복한 공부를 하라"고 전했다.

"저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30년이 넘도록 공부를 했습니다. 5수 끝에 간신히 턱걸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심지어 사법연수원에서는 700명 중 꼴찌도 해봤어요. 하지만 지금도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목표가 있는 여유로운 꼴찌였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학원부터 보내고, 성년이 될 때까지 비싼 돈을 들여가며 과외다 학원이다 난리법석입니다. 노후 대비 자금을 쓰거나 빚을 내가면서까지 말이죠. 그런 현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물론 이왕 하는 공부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나은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인생 최고의 가치는 바로 행복추구입니다. 행복을 어떻게 찾아가느냐에 대해서는 부모가 조언을 해줄 수 있지만, 결국 그 길을 찾아내는 것은 순전히 아이들의 몫입니다. 1등 한 아이보다, 명문대에 간 아이보다, 제 스스로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아이를 둔 부모가 진정으로 행복한 부모가 아닐까요?"

빵점 받은 날 파티 열어줘

박용두 변호사의 특별한 교육 마인드는 아이들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 경담 군이 빵점을 받아왔을 때도 박 변호사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저는 한 번도 아이들의 성적을 보고 화낸 적이 없습니다. 경담이가 빵점을 받았을 때도 '우리 집에서도 빵점이 나오는구나.' 하며 신나게 파티를 열어줬죠. 점수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요, 그 역시 실패가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만일 그때 제가 어떻게 이런 점수를 받을 수 있느냐며 아이를 무시하고 다그쳤다면 어땠을까요?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넌 왜 돈을 그것밖에 못 버니? 네 나이 때 케네디는 대통령까지 했는데 넌 뭐니?'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한 번쯤 생각해볼 일입니다. 아이들을 너무 고생시키지 마세요. 공부시키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교육이 대학입시를 통칭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 즐거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 아닐까요?"

아내 박혜희 씨(52) 역시 남편의 이런 생각에 동조한다. 물론 처음부터 남편과 같은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뭐든지 똑 소리 나게 잘했던 큰딸 경채(23)와는 달리 경담이를 키우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경채는 공부에 대한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부모에게 당당히 요구하는 아이였어요. 어떤 면에서 보면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기만 하면 되니 편한 부분도 있었죠. 반면 경담이는 뭔가 하고 싶다거나 해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엄마로서 뭐라도 해줘야 된다는 부담감이 생겼고, 일하느라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 해줘서 성적이 안 나오나 싶어 조바심도 나더군요. 게다가 아빠가 변호사라는 것 때문에 아이가 당연히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늘 부담스러웠고요. 그래서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갈 즈음 저도 여느 엄마들처럼 잘 가르치는 학원이나 과외 정보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었는데, 결국 그건 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일일 뿐이었습니다. 아이를 아빠와 비교하며 경쟁 속으로 내몬 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었어요. 세 아이에게 각각 다른 성향과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남편과 뜻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뜻 존중하고 스스로 선택하게 해

박용두 변호사 부부는 아이들의 의견에 항상 귀를 기울인다. 부모로서 일관성 있게 가르쳐야 할 사회적 규범 교육과 훈육 시간 외에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항상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며 그 뜻을 존중한다. 공부와 진로 역시 아이들의 뜻을 따랐다. 큰딸 경채가 중학교 2학년 때 중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박 변호사는 그 뜻을 존중해주었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모르는 중학교 2학년이 혼자 중국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데 어느 부모가 흔쾌히 보내겠습니까. 하지만 큰아이는 워낙 자기관리가 투철한 데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중국 학교에 보냈는데 자기가 원해서 시작한 공부라 그런지 잘 해내더군요. 1년 만에 중국어를 마스터했어요."

큰딸을 보면서 '진정 원해서 하는 공부'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는 박 변호사는 누나와 성향이 전혀 다른 경담이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경담이는 다분히 문과적 성향이 강했는데, 정작 본인은 수학과 과학을 좋아한다며 이과를 선택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과를 선택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아들 때문에 남모르게 속앓이도 했지만 큰아이의 경우를 떠올리며 경담이의 뜻을 존중해주었다. 그뿐 아니다. 지난해 입시를 치르고 나서 담임교사가 1년만 더 공부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대학에 충분히 갈 수 있다며 경담이에게 재수를 권했단다. '더 좋은 대학'이라는 말에 잠시 흔들렸지만, 이 역시 전적으로 아이의 뜻을 따랐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만약 제가 부모님이 원하는 문과를 선택했다면 고등학교 내내 공부가 싫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부모님께서 재수할 것을 강요하셨다면 아마 올 1년 동안 제가 망가졌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제 자신에게 만족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생활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 대학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저만큼 행복했던 고3 수험생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경담이의 말이 끝나자 박 변호사는 '아이들은 부모의 전유물이 아니며 부모가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자라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셋째 경서(11)는 스스로 자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교육관 속에서 성장해가고 있다. 경서는 여느 아이들처럼 1등을 하고 싶다는 말보다 "세상에서 역사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몫이 있습니다. 또한 그 그릇대로 간다는 확신이 있죠.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아빠는 공부하는 재주밖에 없었던 사람이고, 너희는 각자 스스로 판단하는 또 다른 재주가 있을 거라고 자주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1등 지상주의가 곧 성공의 키워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공의 형태는 정말 여러 가지니까요. 사회적인 출세나 자리매김보다는 어느 곳, 어떤 자리에 있든 내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부모가 가장 행복한 부모이고, 그런 부모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case 2
이옥선 씨의 지혜로운 교육 비법
"공부? 아이 스스로 행복해지게 놔두세요!"

 

"한때 학벌 지상주의에 일조해본 적이 있는 엄마"라며 자신을 소개한 워킹맘 이옥선 씨(42). 그는 스스로 학벌 지상주의 엄마임을 자각하고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고등학교 1학년인 큰아들 김지후(17)와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 정후(13)의 성적에 대해 자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엄마와 아이 모두 예민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비 온 뒤 땅이 더 단단하게 굳는다'는 말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마침내 행복한 엄마,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엄마가 성적에 매달리면 아이들이 불행해져

"큰아이 지후를 캐나다로 1년 6개월간 유학 보냈던 것이 변화의 계기가 됐어요. 잔디 축구장이 있는 선진국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며 해외에 보내달라고 하길래, 때론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어 큰맘 먹고 혼자 외국에 보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캐나다에서는 학교만 보냈는데, 귀국 후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보니 제 마음이 극심하게 조급해지더군요. 1년이 넘는 공백 기간 동안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다른 아이들을 따라가려면 종합학원에 보내 성적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당시 지후는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이 배웠던 5, 6학년 공부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중학교 선행 공부도 거의 못 했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속이 탈 수밖에요. 저는 저대로 예민해지고 아이는 아이대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0시에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참 많은 생각이 교차하더군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이가 너무나 지쳐 있었고, 그때 처음으로 '내 아이의 모습이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불행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이건 아니다 싶어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그때부터 나는 절대 학벌 지상주의 엄마가 아니라며 부정해온 사실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달라져야겠다고 다짐했죠.

"둘째 정후는 아직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부나 성적에 대해 엄마가 느끼는 중압감이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슬슬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는 게 이옥선 씨의 솔직한 심정. 특히 정후는 기분이 좋거나 1교시에 보는 시험의 경우 90〜100점을 받는 반면, 5교시에 보는 시험이나 별로 공부하고 싶지 않은 과목은 10〜20점을 받을 정도로 성적 편차가 유난히 컸다고 한다. 게다가 정후는 '성향이 독특한 아이'였다. 관심 있는 일에는 열정적으로 올인하지만 창의적이지 않거나 반복되는 일을 싫어하며 계획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옥선 씨는 큰아들 지후의 성적에 조급해했던 과거 시행착오들을 떠올리며 정후를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둘째는 한마디로 스파크형 아이입니다. 마치 발명가처럼 항상 뭔가를 만드는 일에만 몰두하죠. 관심 있는 일엔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일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 1%의 창의성을 지닌 아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시험 점수를 10점 받을 때도 있지만 말이죠.(웃음) 엉뚱한 면도 많습니다. 오전엔 머리가 멍해서 공부가 하나도 안 들어오니 점심 먹고 가는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둥 엄마 입장에서는 정말 속 터지는 말들이죠. 대안학교에 보내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제도권 안에서 적응하는 것이 힘든 아이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아이 스스로 보완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서서히 이겨낼 수 있도록 믿고 지켜봐주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진정으로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

이렇듯 마음을 고쳐먹고 난 뒤 이옥선 씨는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을 점진적으로 정리해나갔다. 대신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선에서 일상생활도, 공부도 자율에 맡겼다. 엄마들의 고질병인 '남과 비교하기' 습성을 버리고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존중해주었다. 그 결과 지후, 정후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들 스스로 진짜 행복해지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억지 공부는 누구나 하기 싫잖아요. 공부란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부모님이 자꾸 다른 친구와 비교하거나 점수를 다그치면 더더욱 하기 싫은 법이죠. 달라진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공부가 하고 싶어졌어요. '자랑스러운 내가 되고 싶다',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부가 즐거워졌고, 점수나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하루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보람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게 제 일상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예요. 제가 정말로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지후의 이런 변화는 자연스레 동생 정후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요즘 지후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동생에게 영어 동화책을 읽어줍니다. 자신이 겪었던 공부 스트레스를 동생이 겪는 게 싫다며 즐겁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면서요. 제가 하는 일이요? 그저 아이들을 격려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묵묵히 지켜봐주는 것뿐이죠. 물론 지후 스스로 학습적인 도움을 원해서 약간의 사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만, 제가 억지로 시키는 것과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덕분에 지후, 정후에게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다는 것이다. 특히 사춘기인 지후가 예전보다 더 잘 웃고 먼저 농담을 건네는 등 밝고 쾌활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자기주도적으로 일일 계획표를 정리하고 나눔 활동에도 관심을 갖는 등 공부 이상의 가치도 찾아나가고 있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그날 하루를 반성하며 스스로를 평가해보는 일은 이제 이옥선 씨의 집에서는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다.

아이들이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베풀고 싶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게 된 것도 큰 변화다. 실제로 지후와 정후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매달 5만 원씩 어려운 친구들에게 후원하고 있다. 게다가 후원하는 친구들의 사진을 벽에 걸어 놓고 매일 아침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주문처럼 외운다고.

이 모든 변화는 엄마 이옥선 씨의 노력 덕분이다. 행복한 아이들이 있어 절로 행복해지는 엄마. 행복한 엄마가 있어 절로 행복해지는 아이들. 이 필요충분 조건이 행복한 부모,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비법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둘째 정후가 남긴 마지막 말이 꽤 오랫동안 귓가를 맴돈다.

"엄마는 저희를 믿어줘요. 저희를 사랑하죠. 그리고 저희는, 저희를 믿어요."

case 3
김홍규·강민옥 씨 부부의 롤모델 교육법
"부모교육을 받으며 180도 달라졌어요!"

 

"1년 전의 엄마보다 지금의 엄마가 백배 더 좋아요. 엄마가 생각을 참 잘하신 것 같아요."

올해 중학교 2학년인 현준 군(15)의 말을 듣고 나니 그 속사정이 궁금해졌다. 현준 군은 과학에 남다른 소질을 지닌 과학 영재로, 초등학교 때 경기도에서 주최한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해 교육감상을 받기도 했다. 환경 동아리에서 UCC를 제작해 SBS에 공모, 현준 군이 속한 팀이 환경부장관상을 받은 적도 있다.

응용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모범생이었음에도 엄마의 속을 썩였다는 게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 강민옥 씨(40)의 고민은 이랬다. 둘째 현수(13)는 올해 6학년이 되었고 셋째 윤수(10)도 아직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공부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첫째 현준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시기에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고 한다. 특히 주위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라며 치켜세울 때마다 현준이를 남보다 더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자신과는 다르게 성적에 초연하여 아이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놔두라고 말하는 남편 김홍규 씨(43) 때문에 혼자 속앓이도 많이 했다.

"6학년 겨울방학 때였어요. 현준이는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조금만 더 시키면 훨씬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죠. 더군다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선행학습을 해둬야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갈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에 입학 전 두 달 동안 심하게 영어 특강을 시켰죠. 매일 5시간씩 주 5일반에 보냈는데,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영어를 자연스럽게 하던 아이가 영어 특강을 받은 이후 오히려 영어에 흥미를 잃어버린 겁니다.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엄마가 결정해서 강요했기 때문에 아이도 극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고, 저 역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때 참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자',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자' 그리고 '아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만들자'며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는 운동도 하고 피아노와 클라리넷도 배우며 자유롭게 방학을 보내도록 배려해주었죠. 애나 어른이나 억지로 시키는 일은 하기 싫잖아요.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덕분에 큰애나 저나 요즘은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현준이가 지금도 저한테 그래요. 엄마, 진짜 생각 잘한 거라고.(웃음)

 

"부모교육 받으며 마인드 바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첫째와의 마찰 이후 강민옥 씨는 한동안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강압적으로 시키는 것이 옳지 않지만, 중학생이다 보니 뒤처지면 어쩌나 내심 불안했던 것이다. 그때 남편의 조언대로 도서관이나 시청에서 실시하는 부모교육 강연을 듣기 시작했고, 서서히 부모 마인드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셋이나 되는데 첫째에 이어 둘째나 셋째에게도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아직은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없어 오빠에 비해 자유롭게 생활하는데, 그것을 일순간 불행의 씨앗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녀교육에 관한 책을 꾸준히 읽고 부모교육학 강연을 들었습니다. 부모가 달라져야 아이도 달라질 수 있고, 무엇보다 부모가 아이의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깊이 통감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현재 저의 롤모델은 바로 남편이랍니다."

지금까지 김홍규 씨는 아내와 사뭇 다른 교육관을 갖고 생활해왔다. 아이들에게 한 번도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이 없고, 시험 점수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 적도 없다. 심지어 아이가 50점을 받았어도 "50점밖에 못 받았냐"가 아니라 "50점이나 받았냐"며 항상 긍정적으로 말해주었다. 점수를 잘 받는 것보다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부모들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성적이 전부가 아니에요. 그 외 다른 쪽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교육적 가치를 성적에 국한시키지 말고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믿어주는 자세가 필요해요. 만일 아이가 곤충에 관심이 많아서 곤충 이름을 잘 외운다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물론 부모교육을 받을 당시에는 그러면 안 된다고 깨달으면서도 막상 집에 오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부모교육을 받고 있고, 아내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교육의 가치에 대해 서로 보완적인 입장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거실에 있던 TV를 치우고 그곳을 온 가족이 자연스럽게 책을 볼 수 있는 서재로 꾸민 것도 김홍규 씨의 아이디어 중 하나다. 처음엔 아이들도 불평불만이 많았다. 부모님이 없을 때 몰래 TV를 보는 아이들 때문에 전선을 끊어놓기도 여러 번. 그러다 서재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하나둘 그 옆에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단다. 그뿐 아니다. 아내 강민옥 씨는 아이들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남편 역시 IT 자격증 공부를 하며 세 아이에게 항상 공부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서관을 찾는 날이면 이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아이들이 따라 나선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라, 공부를 하라는 말 한마디 없이 자유시간을 주었고, 그런 생활이 여러 번 반복되자 어느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아빠, 엄마의 일상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자기주도적 생활습관 길러줘

"요즘은 열 번의 잔소리보다 한 번의 실천이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낍니다. 덕분에 현준이, 현수, 윤수 모두 많이 변했어요."

엄마의 말이 끝나자 세 아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의 연간 목표 리스트를 가져왔다. 아이들의 목표가 거창하지는 않았다. 축구에서 골을 많이 넣는다거나 새해맞이 보신각 종 치는 모습을 보러간다는 등 소소한 소망들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소중하고 거창한 목표가 될 수도 있다. 공부든 운동이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아이들 스스로 성취하게 되면 자존감이 높아질 뿐 아니라 조금씩 더 큰 목표와 세부 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다는 게 부부의 생각이다.

"저는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 석 달 뒤에 있을 기말고사를 앞둔 제 자신에게 편지를 써요. 시험을 못 보면 못 본 대로, 잘 보면 잘 본 대로요. 아빠, 엄마가 저를 혼내시는 것보다 제가 직접 제 자신에게 호통의 편지를 쓰는 게 더 무섭더라고요.(웃음) 기말고사 공부를 앞두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공부 좀 하자며 스스로에게 다그치면 어떨 땐 그게 꽤 기분 좋은 스트레스가 되거든요."

현준이의 말이 제법 어른스럽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부모가 모든 것을 자율에 맡긴 후부터 점차 여유롭고 성숙해졌다. 요즘 현준이는 '매일 아침 유머 하나씩 하기'를 일일 목표로 세웠다. 행복한 하루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수칙이라고 했다.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니 공부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어릴 때부터 배웠던 피아노를 연주하고 주말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자신만의 즐거운 돌파구를 찾았다.

오빠에 비해 비교적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적은 현수와 윤수도 다르지 않다. 일일 목록들, 조목조목 정리한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기에 아이들의 얼굴엔 늘 즐거움이 가득하다. 둘째 현수의 마지막 말이 그래서 더 인상 깊이 다가온다. "저희 아빠, 엄마는 멋진 분이세요. 잔소리 안 해서 멋지고, 저희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해주셔서 멋지고, 금슬이 좋은 부부여서 멋지고, 키 크고 잘생기고 예뻐서 멋지고, 무엇보다 저희 아빠, 엄마라서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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