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학년도 학생간부수련회(정림사지 5층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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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종열 | 등록일 | 12.04.07 | 조회수 | 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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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사적 제301호. 1942년 발굴조사 때 ‘대평 팔년 무진(大平八年戊辰) 정림사대장당초(定林寺大藏當草)’라고 쓰여져 있는 고려 초기의 기와 명문(銘文)이 발견되어 정림사라고 부르며, 이 기와가 1028년의 것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국보로 지정된 백제 때의 5층석탑은 그 이전에도 절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1979년과 1980년 2년에 걸쳐 충남대학 박물관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많은 유물과 가람의 규모를 밝혀냈다. 가람의 배치는 강당과 금당(金堂) ·중문(中門)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고, 강당과 중문을 연결한 회랑(廻廊)이 있으며 금당과 중문 사이에는 1기의 탑을 배치한 1탑식 가람으로 전형적인 백제 때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출처 네이버테마백과사전>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이 석탑은 익산(益山)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石塔)과 함께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다.
목조건물의 가구(架構)를 모방하고 있으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정돈된 형태에서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체의 형태가 장중하고 명쾌한 기풍을 풍겨준다. 초층탑신(初層塔身) 4면에는 당(唐)의 소정방(蘇定方)이 백제(百濟)를 멸한 다음 그 기공문(紀功文)을 새겨 넣었으나 이는 탑이 건립된 훨씬 뒤의 일이다. 이곳 일대의 발굴조사에서 정림사명(定林寺銘)이 들어 있는 기와가 많이 출토되었다.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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