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석고등학교 로고이미지

동아리연간계획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보살사 설명
작성자 이재학 등록일 09.06.15 조회수 172
첨부파일
보살사.hwp (138KB) (다운횟수:54)

보살사[菩薩寺]                                   

  보살사는 충청북도 청주시 용암동에 있는 절이다. 청주 근교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서, 567년(진흥왕 28) 법주사를 창건한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하였다. 그 뒤 778년(신라 혜공왕 14)에 진표율사의 제자인 융종대사가 중창하였고, 923년(태조 6)에 고려 태조의 다섯째 왕자인 증통국사(證通國師)가 3창하였으며, 1107년(예종 2)에는 자정국사(慈靜國師)가 4창하였다.

또한 공민왕은 전답(田畓)을 하사하여 향화공양(香火供養)의 비용으로 사용하게 하였고, 1458년(세조 4) 12월에는 세조의 명으로 중수하였으며, 1626년(인조 4)에는 벽암(碧巖)의 제자 경특(瓊特)이 중수하였다. 그 뒤 1683년(숙종 9)에 일륜(日輪)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살사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등 조선의 각종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어 폐사되지 않고 계속해서 불사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와 조선에 걸쳐 여러 차례 왕명으로 불사가 이루어 진 점을 볼 때 왕실의 보호를 받은 사찰로 보인다. 고려 후기 보살사와 주변 사찰 사이의 토지분쟁을 고려왕실에서 조정했다는 기록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고려시대에는 법상종 계열의 사찰이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음력을 기준으로 매월 초하루, 보름, 관음재일(24일)에 법회가 열리며, 등록된 신도는 5,000가구이다. 고려시대 청주의 용두사(지금은 사라짐), 보은의 법주사와 함께 이 지역의 대표적인 대한불교 법상종 사찰이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청주 지역 불교의 역사에서 보살사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한때 융성했다 사라진 다른 사찰과는 달리 보살사는 창건 이후 단절되지 않고 법등을 밝혀 1,500년 청주 불교의 맥을 잇는 유서 깊은 고찰이기 때문이다. 1530년에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환선사(歡善寺), 선림사(仙林寺), 영천사(靈泉寺)가 모두 낙가산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보살사만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보살사 경내의 전각으로는 극락보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6호)을 비롯하여 명부전, 삼성각, 요사채 및 부속 건물이 있다. 극락보전은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내부에는 보살사 석조이존병립여래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호)과 지장보살상, 삼존불 등이 봉안돼 있다. 이밖에 보살사 오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5호)과 중수비, 석탑옥개석, 동종 등이 있다.

<보살사 극락보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6호

아미타불을 모신 보살사 극락보전은 조선 초기에 지은 것으로 선조(재위 1567∼1608) 때 수리하였으며, 고종 9년(1872)에 다시 지은 것으로 조선 초기 건물의 특징이 강하게 남아있는 불전건축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소박한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된 다포식 건물이다. 극락보전 안에는 1683년(숙종 9)에 법당 건물이 중건될 때 함께 봉안된 불상으로 추정되는 소조아미타삼존불과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석조이존병립여래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호)과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또한 왼쪽 벽에는 극락회상탱화가, 오른쪽 벽에는 칠성탱화가 있다.

  <보살사 석조이존병립여래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호

1972년 상당구 용암동 보살사의 경내(境內)에서 발견되어 현재 극락보전 내(極樂寶殿內)에 봉안되어 있다. 현재 이 불상은 극락보전 안에 있는 넓은 판석에 부착시키고 팔각대좌 위에 모셔 놓았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976년 12월 20일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의 크기는 광배 폭 67㎝, 불상 높이 64㎝, 머리 높이 16.5㎝, 육계 높이 1.5㎝, 머리 폭 7.5㎝, 어깨 높이 46㎝, 어깨 폭 19㎝, 대좌 높이 9.5㎝, 두께 12.5㎝이다.

석조이존병립여래상은 한 광배(光背) 안에 여래입상 2구(軀)가 나란히 부조(浮彫)된 특이한 형식의 상이다. 두 여래상은 거의 같은 모습인데, 수인(手印)만 서로 반대여서 대칭을 이룬다. 전체적으로 머리가 크고 키가 작달만하여 귀여운 동형불의 특징을 보인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몸에도 통통한 양감이 표현되어 있다.

대의(大衣)는 통견(通肩)으로 가슴이 벌어지게 입었다. 옷 주름선은 몸에 밀착되어 팔과 다리의 굴곡이 드러나 보인다. 손은 몸의 가운데로 모아서 시무외(施無畏)·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있다.

  These twin stone Buddha here at Bosalsa Temple are carved in relief on a large flat rock. The Buddhas share the same halo. They are almost the same size and style, both childishy cute in appearance: baby faces with big innocent smiles, delicate bodies clad in simple robes with baby-like hands folded. It is easy to see that these Buddhas represent a naive and pure Buddhist spirituality. The elegant description and simple motifs indicate that this was a work of the Goryeo period. The twin child Buddhas are significant because they may have something to do with the twin seated images of Sakyamuni and Prabhutaratna.

  <보살사 5층석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5호

조선시대 탑으로 기단부터 상륜부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지대석 위에 하대석을 대신하는 3단의 받침이 있고 그 위에 중판복엽(重辦複葉)의 복련화문(伏蓮花紋)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중대석이 생략된 단층기단이 구성되어 있다. 복련석 윗면에는 1단의 탑신 괴임이 조출되었다.

초층 옥신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각출되었으며, 그 내면에 2개의 사각형과 내원을 음각하고 그 안에 범자(梵字)를 음각하였다. 초층 옥개석은 층급받침이 2단이고 끝이 반전되지 않아 둔중한 느낌을 준다. 그 위의 층도 초층과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륜은 5층 옥개석 윗면에 붙여 동일 석재로 만들었는데 노반이 없고 복발과 보륜, 그리고 연봉이 장식되어 있다.

2층 옥신(탑신)에 새겨진 ‘강희계미(康熙癸未)’라는 음각 명문에 의하여 1703년(숙종 29)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Each of the five stories of this simple stone pagoda with a three-tier foundation is of decreasing size. The foundation is topped with a cover stone decorated with a lotus pattern carved out of the stone indicating that the pagoda is from the Joseon period(1392-1910), although there are also influences from the earlier Goryeo(918-1392) and late Unified Silla(668-935) periods.

이전글 더 많은 활동사진
다음글 6월정기답사(보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