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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
작성자 용산초 등록일 07.04.16 조회수 64
시대   통일신라
  제목   김생(金生)

(771(성덕왕 10) ∼ 791(원성왕 7)

김생은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로 삼국사기 권48 열전 제8 김생조에 의하면 김생은 부모가 가난하고 신분이 낮아서 가계를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80이 넘도록 글씨에 몰두하여 예서, 행서, 초서가 모두 입신의 경지였다. 숙종때 송나라에 사신으로 간 홍관이 변경(북송의 서울) 하남성 개봉에 묵고 있을 때 한림대조 양구와 이혁이 황제의 칙서를 받들고 사관에 와서 그림족자를 썼는데 이때 홍관이 김생의 행서와 초서 한권을 보이니 두 사람이 크게 놀라며 "오늘 뜻밖에 왕우군(진대의 명필 왕희지)의 글씨를 보게 될 줄 이야"하고 감탄하자 홍관이 말하기를 "이것은 신라사람 김생이 쓴 것이요"하니 두 사람이 웃으며 "천하에 우군을 제외하고 어찌 이런 묘필이 있으랴!"라고 하였다. 이에 홍관이 여러 번 김생의 글씨라고 하였지만 끝내 믿지 아니하였다는 내용이다

이상에서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의 출신이 가난했고 원성왕 6년(790)까지 80여세를 살면서 글씨 공부에만 전념했음을 알 수 있을 뿐 그 밖의 것은 분명하지가 않다.
다만 동국여지승람 충주목 불우조 김생사항에 김생이 두타행을 닦으며 이곳에 머물렀기에「김생사」라 이름하였다는 기록과 그의 글씨로 전해지
는 작품들이 모두 사찰 또는 불교와 관련된 점으로 보아 호불불취 하였다는 그의 생을 짐작할 뿐이다.

그는 특히 고려시대 문인들에 의하여 해동제일의 서예가로 평가받아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는 그를 신품제일로 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미 그의 진적이 귀해져 이광사의「원교서결」에서 그의 진적은 절무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필적으로 현재 경복궁에 있는「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가 있다

이 비의 비문 글씨는 고려 광종 5년(954)에 승려 단목이 김생의 행서를 집자한 것으로 통일 신라와 고려시대에 유행한 왕희지, 구양순류의 단정하고 미려한 글씨와 달리 활동적인 운필로 서가의 개성을 잘 표출시키고 있다. 또한 짜임새나 획의 처리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틀에 박힌 글씨에서 벗어나 운치를 살리고 있다.

그의 유일한 서첩으로「전유암산가서」가 있으며「해당명적」,「대동서섭」에 몇 점이 실려있다. 특히「여산폭포시」는 자유분방하면서 힘이 넘치는 필적이다. 이밖에「창림사비」가 있는데 현재 원비는 물론 탁본조차도 전하지 않는다. 단지 원나라의 조맹부가「동서당집고첩발」에서 창림사비는 신라 김생의 글씨로 자획에 전형 이 깊어 당인의 명각이라도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품평이 전한다.

충주의 탄금대를 끼고 흐르는 남한강의 북쪽 금가면 유송리 반송부락에는 김생이 지었다는 김생사의 절터가 있으며 반송마을 한강변으로 긴 축방이 있는데 이 제방을 김생제방이라 부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김생사에서 공부하던 학동들이 제방 쪽의 여울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방해가 되므로 김생이 도술을 써서 이 여울물을 돌리고 제방을 쌓았는데 이후 여울소리가 끊어졌다고 하여 벙어리여울이라 부른다고 한다.

김생의 글씨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역대의 명필들이 극찬을 하였으니 그를 정리해 보면 왕희지와 아주 흡사한 것 또는 그의 필법을 능가했다는 것으로 왕희지는 중국 서예사에 전무후무한 고금 제일인자라 불리고 있으니 김생을 그에게 비함은 더할 나위 없는 극찬의 말이다.

김생의 글씨는 예, 행, 초의 온갖 글씨체에 다 능했으며 참으로 풍운의 조화와 사람으로서 신의 경지에 들어간 필치로 중국의 서성 진나라의 왕희지를 능가하는 전무후무한 서예의 대가였음을 알 수 있으며 김생이야말로 이름과 실상이 어긋나지 않은 동방서도의 고금 제1인자라 할 것이다.

충주시 금가면 유송리 반송 김생사지에는 김생의 글씨를 집자한 비가 세워져 있고 김생선생숭모비가 충주체육관 앞에 세워져 있으며 김생연구회가 설립되어 김생선생에 대한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고, 김생선생을 추모하고 후예 양성을 위한 김생추모 전국서예대전이 충주문화원 주최로 해마다 성대하게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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