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상은 현재 대원사 앞뜰에 안치되어 있으나 충주공고옆 노천에 방지되었던 것을 중원군청으로 옮겼다가1959년 12월 15일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한 면의 길이가 97cm 높이 65cm의 비교적 큰 규모의 화강암 탑신석위에 안치된 철불의 머리는 나발인데 육계는 작은 편이며 미간에는 지름 2.5cm의 백호공이 있다. 상호는 이마가 넓고 턱으로 내려 올 수록 좁아져서 양쪽 볼에 살이 빠졌으므로 풍만한 인상을 주지 않으나 단아한 감을 느낄 수 있다.
눈섭은 가늘게 반원형으로 그리고 눈은 반만 뜨고 시선은 밑을 향하고 있으나 눈꼬리가 길게 치켜 올라가게 조각하여 괴상해 보인다. 상호에 비해 코는 작으며 인중이 짧고 입술이 도톰해지는 등 고려시대 불상에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슴과 어깨가 넓고 당당하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법의는 통견이며 가슴앞에 길이 10cm의 군의 매듭을 양각시켜 표현하였다. 옷주름은 3줄의 돌기선으로 표현되어 팔에서는 사선을 그엇고 가슴 밑에서 "U"자 형을 만들었으며 불신 뒷면의 의습처리는 오른편으로 처리하여 도식화 하였고 뒷면 중앙부에 광배를 장식했던 흔적이 보인다.
불상 전체에 비해 무릎이 넓어서 안정감을 주고 있고 두 다리가 수평되게 평행선을 그엇는데 모두 융기 선으로 되어 있어 힘있게 느껴지는 반면 매우 형식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무릎 밑에서 올라간 굵은 3줄의 음각선과 양다리 사이의 삼각형 옷주름 양식 등은 완전히 도식화하였다. 양 수인이 절단된 상태여서 석가여래인지 약사여래인지를 확인할 수 없다. 상호에서는 인상과 인체 묘사에 착실함이 부족한 점과 의문을 형식화 내지 도식화 한 것 등을 종합할 때 11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유행은 통일신라 하대부터 성행된 것이나 고려시대의 불상은 무엇보다도 그 조각 기술에 있어서 신라보다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거대한 조각에 있어서 퇴화의 모습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