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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사랑체험 소감문 최우수작
작성자 충주여중 등록일 10.07.25 조회수 390
걸인 최 귀동 할아버지와 오 웅진 신부님께서 만드신 꽃동네.

※꽃동네 봉사활동 체험 보고서※
봉사 일시: 3월 15일~17일.
봉사 장소: 충북 음성 꽃동네.

충주여중 3학년 6반 32번 홍 미선

충북음성, 꽃동네에 도착하고 선서를 하고 인사를 하고, 입소식이 다 끝나갈 때 쯤, ‘이 태 은 야고보’ 수녀님 이라는 분께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 꽃동네 가족 분들에게 많은 걸 배워가세요. 꽃동네 가족 분들은 여러분에 스승입니다. 많은 걸 깨달아 가시길 바랍니다.” 라고.
이 말을 들었을 땐 솔직히 무슨 말 인건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스승이 되도 내가 될 테고, 뭘 가르쳐 드리는 것도 나일 텐데 어떻게 그분들이 스승이 된다는 건지…그래도 뭔가 있겠지- 하며 그때까지 내 생각은 그냥 반신반의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품으며 내가 사랑은 나눠드릴 ‘환희의 집’으로 갔다. 그 곳은 몸은 불편한 곳이 없으시나, 정신적으로 편치 못하신 분들이 서로 의지하고 계신 곳이었다. 그 곳에 신발을 벗고 본격적으로 사랑을 나눠드리기 위해 문을 열려했는데, 문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쇠 철로 된 문인데 잠금장치까지… 왠지 딱 봤을 때 가둬둔다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좋지 못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하나 둘, 가족 분들이 모여들었다. 애들은 무서운 마음에 뒷걸음질을 치고 소리를 질러 댔으나- 처음에만 약간 좀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을 뿐,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 모두 서툴지만 천천히 가족 분들과 마음을 트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계단청소, 벽 청소, 손잡이를 힘들지만 기분 좋게 끝낸 뒤에 쉬는 시간 중간에 거기 계신 언니들과(그곳에 계신 모든 분들을 언니라 불렀다.) 조금씩, 조금씩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환희의 집3층을(내가 3층 이었다.) 쭉 둘러보았다. 둘러보면서 ‘이 언니 정신지체 장애인 맞아?’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언니가 있는가 하면, 대화가 통하지 않았지만 손만 한 20분가량 말없이 꼭 잡고 있던 언니도 있었고, 바닥에 가만히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계시는 분, 얼굴을 4시간 내내 무릎에 묻고 있었던 언니, 자신 만에 세계에 빠져 마치 누군가랑 대화하듯이 중얼거리는 언니, 옷을 홀딱 벗고 걸어 다니는 언니, 갑자기 웃는 언니, 자기머리를 막 때리는 언니, 막 달라붙으면서 ‘엄마, 아빠’ 라고 말하는 나보다 2~3살 많아 보이는 언니까지. 정말 안쓰러운 마음이 솟구치고 가끔, 우리 엄마 같은 가족 분을 보면서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꾹 참고서 차가운 손을 잡아드렸다.
그렇게 봉사체험을 한 뒤 2박 3일 동안 여러 가지 많은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영상실에서 꽃동네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최 귀동 할아버지와 오 웅진 신부님의 이야기. 일본판으로 된 비디오랑, 공동체 놀이, 노숙자체험, 행복한 인류에 대한 영상, 사랑 초 만들기, 아카펠라, 수화, 레크댄스, 관 체험, 그리고 장애체험까지. 사실 내가 가장 마음을 열고 참여했던 것은 야고보 수녀님의 말씀과 장애체험이었다.
야고보 수녀님께서는 목소리가 굉장히 잔잔하신 분이셨다. 정말 어쩜 그렇게 말을 요리조리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질 정도로 말씀을 잘하시는지 듣고 있으면 속이 후련해지는 게 정말 최고였다. 그런데, 그런 수녀님과 나는 공통점이 있었다. 수녀님께서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다가 이런 말씀을 꺼내셨다.
“제 어릴 적 아버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맨 날 술에 취해 들어오셔서 엄마 못 살게 굴고 저 못 살게 굴고…하루는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는 거예요. 제가 가만히 있었겠어요? 어린 마음에 엄마를 지켜야겠단 생각으로 아빠에게 대들었죠. 결국엔 저도 맞았어요. 그 뒤로 아빠랑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아빠가 너무 밉고 짜증나는 거예요. 속으로 이런 생각도 했어요, 나중에 커서 돈 벌면 엄마한테만 잘해드려야지. 아버지한테 복수해야지. 복수해야지…그리고 커서 내가 이 수녀일하면서 깨달은 거예요. 나 우리 아버지 사랑 안했구나. 한 적도 없구나. 우리아버지, 한번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구나. 아빠가 밉고 짜증나서 사랑하지 않은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밉고 짜증 났던거구나…….”
이 이야기를 하시는 내내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왜냐하면 저 위에 있는 이야기는 토씨하나 빠지지 않고 내 얘기이기 때문이다. 난 저 이야기를 듣기직전까지도 아빠를 미워하고 있었다. 이미 3월 4일 날 눈을 감으셨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술만 먹고 괴롭히는 것 같은 게 잊을 수가 없어서……. 그게 아빠는 사랑하는 방식이셨는데. 진짜, 난 한 번도 아빠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아빠가 하는 일이 다 맘에 안 들고 맨날 술 먹는다고 아무렇게나 내 맘대로 떠들어대고, 사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시기 직전까지도 싸웠었다. 그것도 아주 크게. 이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었다. 용돈 줄 때만 아빠 좋아하고 마음속에선 또 욕하고. 난 정말 사람이 맞는 걸까? 이런 생각 까지 했었다. 크면 엄마만 모시고 아빠는 그냥 내버려 둘 꺼라는 생각. 근데 나 이제는 그런 생각 없다. 절대 없다. 다 내 잘못이었다. 아빠 사랑하지 않고서 미워하고 짜증낸거, 내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빠는 병 때문만이 아니라 외로워서 돌아가신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아빠를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아빠가 계속 술을 마셨었을까…….
수녀님은 그래도 아빠가 지금까지 살아계셔서 사랑한다는 말도 해드리고 그런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장애체험. 정말 이것도 많이 울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시각장애체험을 할 때 눈을 가렸던 안대가 다 젖었을 정도로.
안대를 눈에 감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까만 우주 속에서 담당지도자 선생님께서 짧은 얘기를 해주셨다. 실화인데, 어떤 젊은이가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꽃동네로 와서 꽃동네에 넣어달라고 해서 ‘무슨 일이신데요.’ 하고 젊은이에게 물으니 ‘길에서 며칠 동안 누워 계시 길래 여기로 모시고 왔습니다.’ 해서 우리 담당자 선생님께서 ‘어휴, 감사합니다.’ 하셨덴다. 그리고 할머니 몸 상태를 보니 양호하고 아프신데도 없으셨는데 5년 동안 말을 안했다고 한다. 언어장애시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딱 보니 할머니께서 봉사 나온 중학생과 말씀을 하시고 계시던 것이다.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할머니께 다가가 ‘할머니 왜 여태말씀을 안하셨어요.’ 하고 물으니까 할머니께서 울면서 얘기를 하셨다. 사실은 5년전 자기 손 잡고 여기 데리고 온 젊은이가 자기 아들이라는. 아들이 ‘이 안에서 입도 벙끗하지 말고 살어.’ 라는 말에 5년 동안 정말로 말씀을 안 하시고 사실 할머니 이야기…….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꾸 이상한 생각을 했다. 만약 아빠가 오래오래 살아계셨다면, 젊은이와 할머니의 모습이 나와 우리 아빠로 되지 않았을까……. 젊은이와 할머니가 미래에 나와 아빠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무서운 생각을 말이다.
만약 내가 꽃동네를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동안 아빠에 대한 미움, 증오심으로 나의 이기적인 마음속에서 가면을 쓰고 살았을 것이다. 많은 걸 다시보고 많은 걸 깨닫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수녀님께서는 깨달은 것을 집에가서 돌려 드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젠 사랑을 드리고 싶어도 드리지 못한다. 내가 꽃동네를 좀 더 일찍 갔다 왔더라면 적어도 ‘사랑해, 아빠.’라는 말은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이제야 이런 걸 깨닫게 해주셨는지 원망은 조금 한다. 그러나, 이제 절대로 남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원망할 짓, 후회할 짓 안할꺼다.
그리고 아빠에게 못 드린 사랑까지 합해서 앞으로 열심히 사랑할꺼다. 스승이 되어주시고 많은 걸 깨닫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 꽃동네.
정말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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