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 사랑체험 소감문 우수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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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충주여중 | 등록일 | 10.07.25 | 조회수 | 381 |
천사들의 동네 3학년 2반 홍 미 진 처음 꽃동네로 봉사하러 간다고 했을 때,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었다. 물론 그 가운데 나도 있었다. 봉사활동 가는데 뭣하러 돈까지 내가면서 해야 하냐고, 왜 그 곳에서 우리들이 원치 않는 봉사를 해야 하냐고. 그러나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한 소리였다. 누가 알았겠는가? 열여섯 어린나이에 사랑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줄. 우리가 간 꽃동네는, 차타고 40분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였다. 도착하자마자 지도교사 선생님들을 뵙고, 우리가 이곳에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 등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풀어 놓는가 싶었더니 나와 10명의 무리들은 점심부터 먹고 짐을 풀어놓은 다음, 허겁지겁 연수원 차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우리들이 가는 곳은 남들보다 조금 틀려, 먼저 가서 먼저 와야 되는 곳이라고 했다. 순간 이해가 가질 않았다. 틀려봤자 장애아동들이 모여 있는 곳일 텐데, 틀려봤자 차타고 20분 거리를 달려가는 것뿐일 텐데. '성모'라고 말해주면 될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지도교사 선생님을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오버해서 생각한 것 일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성모'로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잠시 착각을 했었다. 장애아동이라 함은 소리도 막 지르고, 울며불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분명한데, 안으로 들어갔을 땐 너무나도 조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완전한 방음, 철저한 잠금장치……. 아, 그래서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구나. 이렇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구나 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그런 것임을 알면서도 갇혀있을 수밖에 없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래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1004* 이라는 잠금장치의 비밀번호 역시 '천사'의 의미를 상실한 듯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다. 그 곳에서 본 아이들은 천사였다. 어딜 보며, 뭐가 재미있어서 웃는지는 몰랐지만 아이들의 미소는 해맑았다. 눈의 초점은 맞지 않고 얼마나 울어댔는지 눈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눈동자는 맑고 영롱했다. 그 누구보다도 맑고 깨끗한 아이들이 틀림없는데 그들이 병들고 아파서 버려졌다는 사실에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거기계신 수녀님의 말씀에 따라 한 아이의 휠체어를 밀어주게 되었다. 거실과, 복도를 오가며 휠체어를 밀어 주었지만 정작 그 아이와는 한마디도 나눌 수가 없었다. 간혹 가다 노래를 불러주면 작은 입술에 미소를 지어 내는 것 뿐.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친구들이 복도에 누워있어서 오며가며 같이 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친구와 같이 통성명도 하고 어울려 놀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지만 그 친구와 말할 때 그 친구가 계속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 친구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같은 친구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는데, 절대로 얕잡아 보거나 밑으로 내려다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한 척, 마음을 여는 척 했던 내 모습이 오히려 그 친구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된다. 휠체어를 한참동안 밀어주고, 아이들의 점심시간이 되었다. 모두들 휠체어에 앉아 식사를 하기 때문에 휠체어 나르는 일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들을 휠체어에 앉히고, 식사 준비를 모두 끝내자 이제 먹이면 되는가 싶었더니 그때 다운증후군인 한 꼬마 아이가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지만, 수녀님은 그 아이를 꼭 안아 드셨다. 그치만 결국 그 아이는 점심시간이 다 갈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모든 것을 함께했던 시간, '성모'. 그 곳은 더 이상 장애아동들 만을 모아놓은 곳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성모'는 천사들의 보금자리였다. 천사들을 만나고, 우리는 장애체험을 했다. 다리를 묶고, 말을 못하고, 앞을 못 보는 우리는 장애인이 되었다. 장난기 심했던 급우들은 웃지도, 장난치지도 않았다. 천사들을 보고 온 이상 우리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순 간만큼은 경건한 마음으로 체험을 했다. 이럴 수가, 다리를 움직이지 않는 것이 큰 고통이었던가? 말하지 못하는 것이 큰 답답함이었던가?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눈, 마비된 다리, 열지 못하는 입. 이 모든 게 너무나도 무서워서. 참을 수 없이 무서워서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100%다 알 수는 없지만 장애인들의 답답함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듯 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내가 그동안 멸시하고 놀려댔던 장애 친구들에게……. 심금을 울리는 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나'가 아닌 '우리'를 배우며,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고, 가는 순간 까지 눈물로 얼굴을 적셔야 했던 꽃동네. 사랑으로 넘쳐흐를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구나 라고 느꼈던 꽃동네. 꽃동네에서 나는, 사랑과 내 꿈을 얻었다. 수녀님과 이런 대화를 나눈 것이 기억에 있다. "여러분은 꿈이 뭐예요?" 그 물음에 우리는 "선생님이요!" "돈 많이 버는 사람 되는 거요!" "의사요! 아니면 간호사나." 그러자 수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장래희망과 꿈을 헛갈린 거 아니에요? 오신부님은 말이죠.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나기전 진로를 못 잡고 계셨어요. 하지만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난 후 오신부님에게는 꿈이 생겼죠. 그 꿈은 안정된 직장과, 많은 수입을 바란 꿈이 아니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할 것이라는 꿈이었어요." 그 말을 들은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익을 바란 꿈만 쫓았던 내가 그 순간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진짜 꿈을 잊고 살았던 내게 수녀님의 말씀은 충격적이었다. 그 후 나는 꿈을 가졌다.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이 아닌 내 삶을 꾸며나갈 꿈을. 별 거 아닐 것 같았던 꽃동네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주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사랑을 배웠고, 꿈을 찾았다. 어떻게 보면 꽃동네는 나에게 제 2의 인생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잊으려고 하면, 잊혀 지지 않고 길을 걷다가도 무심코 생각날 꽃동네. 사랑하는 것, 사랑 받는것의 기쁨과 소중함을 알려준 꽃동네. 잊지 않을 것이다. 좋은 말씀 주신 수녀님, 잘 인도해주셨던 지도교사 선생님들, 꽃동네 천사들, 꽃동네에서의 추억, 그 곳에서 얻은 사랑, 그 곳 천사들이 찾아준 내 꿈,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참된 의미를 알려준 고마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다. 사랑 받지 못해서 외로워하는 이 세상의 천사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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