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농업고등학교 로고이미지

게시판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숲을 읽는 사람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5.06.21 조회수 3

 

 

숲을 읽는 사람

 

식물분류학자가 채집한 초록의 목소리

허태임 저 | 마음산책 | 2025년 04월 05일

목차

들어가며

그 캄캄한 숲의 밤


미래의 숲을 만드는 어떤 꿈
꾸미려 애쓰지 말라
숲속의 위험하고 무서운 것들
너도밤나무의 멋진 발등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드는 일
고지를 물들이는 오묘한 매력
식물의 말을 사람의 언어로 옮기는 직업

함께여서 가능한


내가 아는 어느 동물학자
고양이가 사랑한 식물
봉화 숲해설가협회
고요한 숲의 공명
호야와 두봉 주교님
구름 꽃 피우는 자기 보호의 귀재
느리지만 오래 걸을 줄 아는 발목에 대하여
한여름 산정에서 한들대는 바람꽃
나와 팽나무를 연결해주는 59번 국도를 따라서
토끼풀을 위한 호소
세상의 모든 것을 담는 시드볼트

계절의 경계에 서서


늦여름에 물들어
가을을 알리는 붉나무
나무의 안위와 풀잎의 안부
겨우살이의 생존법
꽃이 피지 않아도 나는 두근거린다
박주가리의 디아스포라
짝사랑도 병인 양하여


책소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일하고 있는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신간 산문집 『숲을 읽는 사람』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식물분류학자로서 일하는 풍경과 그 과정에서 마주친 식물들에 대해 들려준다.

식물분류학자 하면 조용한 연구실에 앉아 식물 표본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지만, 저자가 일하는 현장은 그와 달리 때로 여러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험준한 산속이다. 책에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식물들을 추적하고 기록해 자연을 복원해나가는 여정이 그려진다.

나희덕 시인이 추천사에 적은 것처럼 허태임 저자는 식물의 언어로 세상을 읽어내는 “식물적 인간”이다. 그의 세심한 시선을 거쳐 찔레꽃, 팽나무, 붉나무, 박주가리, 너도밤나무 같은 초목들이 생기롭게 되살아난다. 직접 찍은 산과 식물들의 사진은 생생함을 더한다.

식물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사랑의 끈 같은 것을 생각한다. 서로를 잇고 있는 끈을. 겨우내 눈 속에 묻혔던 씨앗은 다음 봄이 오면 되도록 좋은 유전자를 고루 섞은 새로운 싹으로 피어난다. 그 싹은 군락을 키우고 영토를 넓히는 방식으로 힘을 보태 세대를 잇는다. - 「숲을 읽는 사람」에서



책 속으로

식물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사랑의 끈 같은 것을 생각한다. 서로를 잇고 있는 끈을. 겨우내 눈 속에 묻혔던 씨앗은 다음 봄이 오면 되도록 좋은 유전자를 고루 섞은 새로운 싹으로 피어난다. 그 싹은 군락을 키우고 영토를 넓히는 방식으로 힘을 보태 세대를 잇는다.
--- p.8

나는 눈물을 훔치며 매일매일 찾아오는 밤이 너희는 무섭지 않느냐고 나무에게 물었다. 어둠을 통과했기 때문에 해가 뜨는 거라고, 빛은 그렇게 우리를 찾아오는 거라고, 그건 지극히 자연적인 거라는 답변이 환청으로 들렸다.
--- p.39

종과 종의 경계를 재단하는 분류학은 고정불변한 진리가 아니라 변화하는 자연에 맞서 유한한 인간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가설을 진리 가까이 이끌려는 계속되는 노력이다.
--- pp.44-45

각종 지도 앱에서 제공하는 정식 등산로 너머 길이 표시되지 않은 구간이 주로 내 일터다. 내가 얻을 수 있는 디지털의 혜택은 딱 거기까지다. 대신에 그때부터 나는 예상 소요 시간을 넘겼다고 초조해할 필요가 없어진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게 된다. 길이 없는 곳에 사는 식물들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만드는 게 나의 일이니까.
--- p.53

가을에 접어들이 식물들의 잎이 말라간다고 해서 식물이 발달을 멈추는 건 아니다. 식물은 더 치밀하게 세포를 만드는 방식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하듯이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 나무는 그렇게 겨울눈을 만드는 일에 힘을 쏟는다. 겨울눈을 안전하게 만들고 나서야 비로소 낙엽의 시절에 든다. 그러고 나면 나무는 다가올 혹독한 시절을 견딜 힘을 얻는다.
--- pp.64-65

공명共鳴은 물리학에서 외력에 의한 진동을 의미한다. 무지막지한 힘의 작용이 아니라 박자에 맞춘 반응을 뜻한다. 바이올린 활로 현을 긁어 진동을 일으키면 그 소리가 공명통에 닿아 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는 현상. 그렇다면 누군가의 사상이나 행동에 공감해 따르는 것 또한 공명 아닐까. 어떤 사람의 자비로운 마음이 파장을 일으켜 주변을 온통 자비로운 기운으로 바꾸는 일이야말로 업業이며 깊은 울림일 것이라고, 자꾸만 더 짙어지는 유월의 가문비나무 숲은 내게 공명한다.
--- p.98

호야는 대체로 심성이 곱고 순탄한 편이다. 너무 자주 물을 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두툼한 잎에 스스로 수분을 비축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식물처럼 빛 경쟁에서 앞서려 키를 위로 높이지도 않는다. 그 대신 다른 식물 아래에서 더 넓게 옆으로 퍼져 산다. 키는 작지만 품은 넉넉한 주교님 같다. 주교님과 호야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광휘가 있다.
--- p.111

59번 국도가 이어준 많은 길 위에서 나는 멈추지 않았다. 팽나무를 만나며 팽나무의 언어를 알아듣고 팽나무의 이름을 바르게 불러주는 일을. 그러는 동안에 나의 포부는 그들에 대한 경외심으로 바뀌었다. 분류학적 실체를 밝히거나 오류를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어쭙잖은 식견이 이제 전과는 다른 형태를 갖추게 된 것도 같다. 우리 행성의 대선배인 팽나무의 지혜를 배워야겠다는 희망과 기대 같은 것으로. 길 위에서 팽나무를 만나는 일을 나는 계속해서 하고 싶다. 여전히 꿈꾸고 싶다.
--- p.142

이제 가을은 유독 더디게 도착하는 것 같다. 이러다 가을이 사라지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근심 따위 아랑곳없다는 듯 갈잎나무는 어김없이 제 몸에서 물든 잎을 뚝뚝 떨군다. 나는 기후 위기와 전쟁 같은 말이 몰고 오는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깊어가는 가을과 머지않은 겨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무는 잎을 모조리 잃고서야 진짜 수형을 드러낼 테지. 나목은 무장도, 꾸밈도, 감춤도 없을 테지. 그러니 나목은 제 것이 아닌 걸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겠지.
--- p.188

박주가리 씨앗의 이동을 ‘출가’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진정한 출가란 특정 수행자에게 한정되는 게 아니며 모든 집착과 얽힘에서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출가라던 법정 스님의 법문처럼, 박주가리 씨앗은 깡마른 채 가느다랗고 길고 촘촘한 깃을 펼치며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내적 절제에 있다고. 그걸 품기 위해서는 거듭된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해낸다. 정말 먼 곳으로 가서 더 넓은 땅에 자리 잡는 그 거룩한 일을.
--- pp.204-205


저 :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대학에서 목재해부학을, 대학원에서 식물분류학을 공부했다. 〈한반도 팽나무속의 계통분류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DMZ자생식물원을 거쳐 현재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에서 우리 땅에서 사라져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1년의 절반 이상은 전국 곳곳의 숲을 탐사하고 식물의 흔적을 기록하는 ‘초록노동자’로 살아간다. 식물과 관련한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이전글 농사, 툭 까놓고 말할게요
다음글 초록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