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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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5.06.12 | 조회수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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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읽기
영국에서 정원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김지윤 저자(글) 온다프레스 · 2025년 03월 19일
목차
프롤로그
1장 리틀칼리지의 학생
정원과 공원 작은 평화 한 조각: 졸업 전시 자연을 배우는 사람: 베스 샤토 가든 런던 비밀정원의 봉사자: 첼시 피직 가든 첫 번째 인터뷰: 구직
2장 런던의 정원 디자이너
마음을 나누는 협업: 나무 농원 클로이의 정원: 정원 설계의 재료 디자이너의 역할: 설계와 현장 1 감리자의 역할: 설계와 현장 2 영국가든디자이너협회 컨퍼런스 즐거움을 위한 정원: 장식과 양식 에밀리 되기: 조율하는 디자이너
3장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네모난 나무: 트렌텀 가든 내 뱃속 어딘가의 강낭콩: 플라워쇼 평화의 충전: 피크닉과 딸기와 사람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 스코그스키르코가르덴 너무 작은 정원은 없다 모두를 위한 정원: 위즐리 정원 두 번째: 인터뷰 이직 런던의 크리스마스
에필로그
후기
책 소개
“그렇게 4년 남짓 적어온 이야기를, 외로웠지만 찬란했던 시간들을 나누고자 마음먹었던 계기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 개인 정원이 없는 이들은 조금이나마 숨쉴 곳을 찾아 공원으로 모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동그라미를 쳐놓고 관람객들 간의 거리를 표시한 공원의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초록빛으로 빛났다. 실내식물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팔렸고 도시의 사람들은 목이 말라 우물을 찾듯 식물을 찾았다. 정원은 정원 있는 집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안식처였다.”(252~53면)
『정원 읽기: 영국에서 정원 디자이너로 살아가기』는 정원 디자이너이자 도시 계획 연구자인 김지윤이 영국에서 정원을 공부하고 다양한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풀어 쓴 책이다. 작가는 서울대에서 조경과 건축을 전공하고 졸업 후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중 정원 공부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영국 남동부의 소도시 첼름스퍼드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의 작은 학교 리틀유니버시티칼리지에서 정원 디자인을 공부하며 영국 정원의 세계로 발을 디딘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에게 영국 소도시의 자연은 낯설었다. 하지만 현대적인 시설을 자랑하는 영미권의 몇몇 대학을 제쳐두고 일부러 이곳을 고른 것은 바로 자연 그대로의 풍경 속에서 정원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시골 생활의 낯섦뿐 아니라 영국 특유의 음울한 날씨 또한 그를 괴롭지만 그 쓸쓸한 계절에도 따듯함이 배어나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이른 아침 부지런히 나가야만 볼 수 있는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는 습도가 높은 영국의 겨울에 볼 수 있는 보석 같은 순간”임을 깨우치며 “어둑하고 흐릿한 겨울을 보내고 나니 왜 영국이 이토록 정원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는지 자연스레 깨닫게”(23~24면) 된다. 리틀칼리지의 느릿하고 소박한 일상에 차츰 적응해가면서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누려왔던 현대사회의 속도와 욕구를 되돌아본다. “캠퍼스에서의 생활 1년은 그간 잊고 지내던 감각을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주위의 살아 있거나 살아 있지 않은 것들, 특히 식물을 온 몸의 감각으로 느끼는 경험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18면) 영국 유학은 작게는 작가의 정원에 대한 관점을, 크게는 그의 세계관 자체를 바꿔놓았다. 그는 리틀칼리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곧이어 런던의 조경 스튜디오에 디자이너로 입사한다. 그곳에서 여러 다채로운 정원 현장을 섭렵하고 현대사회에서 정원이 미치는 영향과 인간이 가진 정원에 대한 관점을 돌아본다. 현대 도시에서 자연환경이 가진 역할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매일 만나는 흙, 풀, 꽃, 나무를 단지 자기 삶의 배경으로서만 인식한다. “계절이 어떻게 변해 어떤 식물이 새로 피어나는지, 아침빛은 어떤 온도와 색을 띠는지 알아차릴 겨를”(34면)이란 없다. 작가는 이 같은 현실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다. 바로 사람들이 매일 이용하는 생활공간을 정원으로 만들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이 책 전반에서 작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자연의 비중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는 리틀칼리지 졸업전시를 준비하면서, 첼시 피직 가든의 봉사자로 지내면서, 에밀리와 존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영국 곳곳의 정원 전시회를 꼼꼼히 살피면서, 서울 대도심 한복판에 한국 전통의 방지원도를 구현하면서, 단순히 실무자로서의 정원 디자이너가 아니라 우리 삶 전반을 돌아보게 해주는 자연의 연결자로 자처한다.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고자 분투하는 작가의 노력이 미덥다.
책 속으로
어둑하고 흐릿한 겨울을 보내고 나니 왜 영국이 이토록 정원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는지 자연스레 깨닫게 됐다. 그들에게 정원이란 여유와 유락 遊樂 이기 이전에 위안과 희망의 공간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 봄에 피어날 구근을 심어주고, 겨울 동안 죽은 듯 보이지만 작게 숨을 고르고 있는 식물들을 곁에 두며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러다 보면 봄을 기다리는 희망과 함께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대학 때 사진학 강의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의 삶은 기다림으로 채워져 있다.” 아침에는 저녁을 기다리고 밤에 잘 땐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리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기다림이며 결국은 삶도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과 같다는 이야기였다. 불교에서는 현재에 충실하라 하고 명상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우리 같은 중생의 삶을 이끄는 건 기다림과 기대, 즉 미래에 있다. 정원은 그렇게 우리를 현재에 집중하게 하면서 또 내일을 기다리게 한다. (24면)
뿌리분이 예쁘게 포장된 나무들이 하늘 높이 매달려 도로에서 뒷마당으로 옮겨졌다. 화단에 영양분 가득한 보슬보슬한 흙이 채워지고 나면, 이제 우리가 나설 타이밍이다. 현장 직원들이 모종판의 식물을 꺼내 도면에 있는 대로 배치해놓고, 도면에 없거나 긴가민가한 식물은 따로 빼놓는다. 그러면 우리는 꽃꽂이를 하는 것처럼 모종의 배치를 조금씩 바꾸고 정리하면서 우리가 상상했던 모습과 비슷하게 연출한다. 같은 꽃을 갖고도 플로리스트마다 다른 느낌의 꽃다발을 만드는 것처럼, 정원 식물의 현장도 비슷하다. 현장에 직접 가야만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현장을 많이 접할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식물을 다루는 일이다. (117면)
내면에서 답을 찾아가는 글쓰기와 달리 디자인은 얼핏 보기에 외부의 자극이 더 필요한 작업 같아 보인다. 하지만 한 시간의 작업을 위해 아홉 시간의 여백이 필요하다는 맥락에서는 디자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의 자극 없이도 반짝이는 알맹이를 창조해내는 천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듣고 본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러고 나서 얻어진 그 알맹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하나의 실체로서의 디자인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건 또 다시 많은 시간을 갈구한다. (124면)
어쩌면 정원이라는 게 부유한 이들만 집 앞 마당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어느 곳도 정원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을 추억해보면 가족 여행에서 길가에 핀 ‘사루비아’ 꽃을 따서 꿀을 빨아 먹거나, 분꽃의 까만 열매를 반으로 잘라 그 안의 뽀얀 분을 손등에 비벼보고, 또 꽃이 핀 토끼풀을 잘라 손가락지를 만들던 기억이 그 어떤 일보다 진하고 향기롭게 남아 있다. 바이오필리아(biophilla)라는 단어가 설명해주듯, 우리에게는 어느 형태로든 자연과 연결되고 싶은 본능이 숨어 있다. 도시마다 그 갈증을 채워주는 보석 같은 공간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211면)
흙에서 중력을 이기고 올라오는 풀과 꽃은 강인하다. 그 강인함에 이끌려 쪼그려 앉아 그들과 가까워지고, 정원 일을 하기 위해 무릎 꿇는 행위는 우리를 땅과 가까워지게 한다. 그렇게 몸을 낮춤으로써 배우는 게 있다. 지금과 같은 자기표현의 시대에 나를 낮추라는 말이 시대착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를 낮춰야 나와 타인을 진정으로 볼 수 있고 또 끝없는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준다. (254면)
저자(글) 김지윤
金芝胤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과 건축학을 전공하고, 영국 리틀유니버시티칼리지(Writtle University College)에서 정원 디자인(Garden Design)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영국의 Emily Erlam Studio & John Davies Landscape와 Cameron Gardens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25년 현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도시계획(Urban Planning and Development)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도시에서 녹지와 정원이 지닌 중요성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2017서울조경박람회에서 한국 전통정원을 주제로 은상과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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