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반려자이자 조력자 |
|||||
---|---|---|---|---|---|
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5.01.22 | 조회수 | 2 |
첨부파일 |
|
||||
일산화탄소를 주식으로 하는 미생물과의 인연으로 시작된 연구 여정은 태평양 너머로 이어졌다. 환경호르몬을 비롯한 독극물 분해 미생물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동안에는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와 같았다. 연구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최대한 빨리 학위 과정을 마치고 싶은 일념에 오로지 그 미생물에만 매달렸다. 돌이켜보면, 크고 대단한 목표를 정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미생물이 신기해서 대학원 생활을 했고, 해보니 재밌었고, 끝내고 보니 미생물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셈이다. 말이 나온 김에 그런 발전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유학생 시절, 마지막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이제 내 이름 뒤에도 ‘박사’라는 수사가 따라온다는 기대에 부풀어 시험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지필고사가 아니라 구두시험이라 더욱 부담스러웠다. 다섯 심사위원이 무작위로 묻는 말에 답해야 하는데,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모를뿐더러, 시험 범위는 미생물학 전 분야라니 시험 준비가 난감했다. 그래서 다소 무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본 실력을 믿고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실전에 임하기로 했다. 문제는 정작 그 순간이 오니 마음먹은 대로 되기는커녕 어느 유행가 노랫말처럼,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였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심사위원장이 쉬운 질문으로 긴장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쉬운 질문’이라는 말에 더 긴장되었다. 그마저 답하지 못하면 진짜 사달이 날 테니 말이다. 실제로 질문 자체는 쉬워도 너무 쉬웠다. “자네 한국에서 왔으니 김치 담글 줄 알지?”라는 물음에 ‘우선 배추를 반으로 잘라 소금물에 절인 다음에’라며 운을 뗐는데, 잠깐 소리와 함께 배추를 왜 절여야 하냐고 다시 물었다.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탓에 “아니…. 그건…. 소금을 안 뿌리면 맛이 없잖아요(You know. No salt, no taste.)”라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나왔다. 순간 심사위원 모두가 크게 웃었고, 나는 그만큼 더 작아졌다. 안절부절못하는 학생에게 심사위원장이 넌지시 말했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인데, 맛보다는 미생물학적으로 생각해 보게나. 살모넬라균이 힌트야!” “아! 염분 농도가 올라가서 살모넬라균이 못 살겠네요”라는 답변에 심사위원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리나라 대표 음식인 김치는 맛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건강 증진 효과까지 지닌 매우 우수한 발효식품이다. 특히 김치는 별도의 씨균(종균) 없이 담글 뿐만 아니라, 상온에서 마냥 두고 먹어도 식중독 같은 감염병 걱정은커녕 오히려 갈수록 깊은 맛을 내는 ‘웰빙식품’이다. 여기에는 우리 조상의 생물학적인 지혜가 녹아 있다. 일단 방금 언급한 것처럼 소금이 유해균 성장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작용원리를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소금에 절이면 배추 숨이 죽는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소금기로 인해 배추 세포 안에 있는 물이 빠져나온 결과이다. 배추 세포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은 유해균 세포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숨이 죽는다. 해당 미생물 사망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을 좋아하는 미생물도 많다. 김치를 맛있게 익히는(숙성하는) 마이크로 셰프, 김치 젖산균(유산균)도 그런 경우다. 또한 김치 젖산균의 발효 산물인 젖산이 쓸데없는 잡균의 생장을 막는다. 이러한 삶의 터전 속에서 형성되는 미생물 생태계는 김치가 익어감에 따라 조화 속에 끊임없이 변해가면서 우리에게 맛과 건강을 선물한다. |
이전글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557 ~ 664 |
---|---|
다음글 | 냄새의 쓸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