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의 놀라운 쓸모 |
|||||
---|---|---|---|---|---|
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4.12.31 | 조회수 | 12 |
그늘지고 축축하면 벽과 옷, 음식물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곰팡이, 징글징글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불청객이 이렇게 기승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먹성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능력 덕분에 곰팡이는 세균과 함께 생태계에서 분해자 임무를 수행하여 지구의 물질순환을 가능케 한다. 참고로 곰팡이를 ‘진균(眞菌)’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는 ‘작은 균’ 곧 ‘세균(細菌)’과 비교하여 ‘진짜 균’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진짜’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곰팡이는 대체 가죽 소재로 당당히 등장해서,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대표적으로 2018년 미국에서 창업한 마이로(Mylo)는 톱밥에서 키운 곰팡이 ‘균사체’로 가방과 요가 매트를 비롯하여 다양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균사체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상한 음식에 핀 가는 실타래 같은 것이 바로 균사체이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촘촘하게 얽힌 상태로 자라는 ‘균사’ 덩어리다. 균사는 곰팡이를 이루는 세포가 연결되어 실처럼 길어진 것인데, ‘팡이실’이라고도 부른다.
끝부분에서 길이 생장하는 균사는 일정한 길이만큼 자라면 가지를 친다. 그 결과, 균사체는 보통 둥그런 모양을 이룬다. 또한 곰팡이는 여러 균사체가 위아래로 얽히며 자란다. 실제로 곰팡이를 실험실에서 배양하면 한 겹으로 자라지 않고 솜뭉치처럼 자란다. 곰팡이는 종류에 따라 균사가 겹치고 두꺼워지면서 위로 자라기도 한다. 곰팡이 가죽 원료의 선두 주자로서 널리 쓰이고 있는 버섯이 그렇다.
버섯에 이어 2022년에는 ‘템페(tempeh)’에서 분리한 사상균의 일종인 ‘리조푸스 델레마(Rhizopus delemar)’ 균사체로 가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템페란 콩을 발효한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이고, 사상균은 이름 그대로 균사를 펼치며 실처럼 자란다. 곰팡이 하면 떠오르는 그 모습이다. 스웨덴 과학자가 주도한 유럽 연구진의 실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말린 빵 40㎏을 분쇄하여 물 1000ℓ에 넣고 80도에서 1시간 동안 살균한 다음 리조푸스 델레마를 투여했다. 이 곰팡이는 비교적 배양이 쉽고 성장도 빨라서 이틀 만에 빵가루 1g당 0.15g에 달하는 균사체를 만들어냈다.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균사체를 모아서 남아 있는 빵가루를 씻어낸 후 무두질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균사체는 가죽과 같은 재질을 띠게 된다.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균사의 평균 지름이 6.9±0.9㎛(마이크로미터)에서 9.4±1.8㎛로 늘어났다. 이후 글리세롤을 처리하여 신축성을 더함으로써, 버려진 빵 조각을 유용한 인조 가죽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음을 입증했다.
2023년 4월, 재료 분야 저명 학술지인 ‘고급 기능성 소재(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매우 흥미롭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논문이 실렸다. 영국 연구진이 ‘가노더마 루시둠(Ganoderma lucidum)’이라는 버섯으로 ‘자가 복원(self-healing)’ 기능을 지닌 곰팡이 가죽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가노더마 루시둠은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영지버섯의 공식 명칭, 곧 ‘학명’이다.
연구진은 엿기름으로 키운 버섯 균사체를 원료로 앞서 소개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가죽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가죽에 일부러 구멍을 낸 다음, 엿기름 고체배지 위에 두었더니 놀랍게도 감쪽같이 구멍이 메워졌다. 곰팡이 가죽이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 복원했을까?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영지버섯 포자이다. 균사체를 가죽으로 만들 때 포자를 적당량 포함시킨 것이다. 이 정도면 곰팡이의 쓸모가 놀랍다 못해 경이롭다. 그런데 어쩌면 이건 시작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
이전글 | 동물의 노랫소리 |
---|---|
다음글 | 과학문화, 난쟁이와 거인의 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