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인간’ 만드는 미생물은 없다, ‘광란의 춤’ 유발 세균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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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4.04.20 | 조회수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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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의 그칠 줄 모르는 몸동작은 ‘무도병’을 연상시킨다. 이 신경질환에 걸리면 몸이 뜻대로 되지 않고 저절로 심하게 움직여, 마치 막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아닌 후천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무도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시드넘 무도병(Sydenham’s chorea)’이다.
1686년, 시드넘(Thomas Sydenham 1624~1689)이라는 영국 의사가 특이한 질환 하나를 보고했다. 환자는 거의 모두 10대 아이들이었다. 손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못했고 절뚝거리며 계속 이상한 몸동작을 했다. 누워서 온몸을 비틀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일단 잠이 들면 경련은 가라앉았다. 병의 징후는 한 번 나타나면 거의 한 달 동안 지속되었다. 재발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다행히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드넘이 질환의 임상적 특성은 정확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정서적 충격과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잘못 짚었다. 19세기 중반에 시드넘 무도병이 급성 류머티즘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특정 연쇄상구균의 감염이 시드넘 무도병의 원인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 발병 과정이 특이하고도 복잡하다.
문제의 세균이 체내로 침투하면 먼저 편도선염이나 성홍열을 일으킨다. 이에 맞서 면역계는 항체를 동원해 공격을 가한다. 이렇게 2~3주가 지날 즈음, 비록 드물지만, 이 항체들이 애꿎게도 심장이나 관절, 뇌 등을 공격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수의운동에 관여하는 뇌 부위에 염증이 생기면 시드넘 무도병 증세가 나타난다. 발병의 직접 원인이 일종의 ‘자가면역 장애’인 셈이다.
사실 서양 중세 역사서에는 무도병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무도광(댄싱 마니아)’이라고 불렸던 이 질환(?)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집단적인 발병 양상을 보였다. 이탈리아 타란토(Taranto) 지방에서는 이런 발작을 거미에게 물렸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런 이유로 이 지역 전통 춤 이름 ‘타란텔라(tarantella)’가 미국으로 건너가 독거미명 ‘타란툴라(tarantula)’가 되었다.
광란이라고 할 만큼 여러 사람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들의 몸을 완전히 장악하고 조종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춤의 광풍은 전 유럽으로 불어 나갔다. 시드넘 무도병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게다가 일부 무도광은 손과 발이 타는 듯한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무도광의 유력한 원인으로 ‘맥각’ 중독이 지목되고 있다. 맥각을 보리 맥(麥), 뿔 각(角) 글자 그대로 풀면 ‘보리 이삭에 돋아난 뿔’이라는 뜻이다. 보리와 호밀을 비롯한 볏과식물에 감염하는 곰팡이의 일종인 ‘맥각균’이 알곡이 들어설 자리에서 만든 ‘균핵’이다. 균핵이란, 환경이 열악해지면 곰팡이가 생존을 위해 만드는 단단한 덩어리 모양의 휴면체이다.
맥각에 들어 있는 여러 독 성분은 통증과 함께 지각 장애와 환각 증세를 일으킨다. 실제로 맥각은 강력한 환각제(마약)의 일종인 LSD를 만드는 원료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도정 과정에서 맥각이 제거된다. 전근대 시대의 무도광들은 의도치 않게 마약에 취해 좀비처럼 움직였을 공산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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