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생식의 세균들, ‘수평 소통’으로 유전자 주고받아 다양성 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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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4.04.05 | 조회수 |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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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균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다(상편 2020년 7월24일자 14면 참조). 건강 도우미와 산업 역군에서부터 장출혈성 병원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이런 극과 극의 차이는 유전정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나쁜 대장균은 착한 대장균에 비해 적어도 1000개 이상 더 많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병원성과 관련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병원성 유전자들이 무작위로 퍼져있지 않고,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는 사실이다. ‘병원성 유전자 섬(pathogenicity island)’이라고 부르는 이들 유전자 무리는 주변 유전자들과 확연히 다르다. 흡사 클래식 선율 중간중간에 재즈 리듬이 들리는 격이다. 다시 말해, 세포분열 과정에서 일어나는 무작위 돌연변이로 생겨나기에는 너무나 조직적이고 이질적이다. 세포 안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 밖에서 들어왔다는 얘기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에 대한 답은 ‘근묵자흑(近墨者黑)’이다.
글자대로 풀면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어진다는’ 뜻인 이 사자성어는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나쁜 버릇에 물들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병원성 대장균은 ‘생물학적 근묵자흑’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온혈동물의 창자에서 1억년 넘게 살아오면서 대장균은 여러 다른 장내 세균들과 조우했다. 이 가운데에는 장티푸스와 치명적 이질을 각각 일으키는 ‘살모넬라(Salmonella)’와 ‘시겔라(Shigella)’처럼 아주 고약한 병원균도 있다. 유전자 분석 결과에 근거해서, 대장균 전체 유전자의 5분의 1가량이 다른 세균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우리의 대장 벽을 손상시켜 출혈을 일으키는 대장균 O-157의 독소 유전자는 시겔라에서 들어온 게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들어왔을까?
■ 세균의 소통 비법 세포 분열만 하는 수직 생식은 개체수는 엄청나게 늘지만 환경 변화 적응에 매우 취약
생물학적으로 생명 현상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단어로 함축할 수 있고, 그 바탕에는 ‘유전자’라는 정보가 자리 잡고 있다. 말하자면 생명체의 고유 특성은 유전정보의 표현이고, 증식(자손 생산)은 지속적인 유전정보 전달의 수단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암수가 있고,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전달하며 세대를 이어간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즉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기에 이를 ‘수직 유전자 전달’이라고 부른다. 단세포 생물이면서 무성생식을 하는 세균에게는 세포 분열 자체가 번식이고 수직 유전자 전달이다.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짝짓기를 통해 유성생식에 성공하려면 굉장히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반면 혼자서 분열만 하면 되는 무성생식은 훨씬 더 쉽고 간편하다. 세균 한 마리가 분열하여 둘이 되고, 다시 분열할 때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 그런데 거듭제곱으로 엄청나게 늘어나는 세균 수와는 달리 유전적 다양성은 거의 그대로이다. 이대로라면 환경 변화 적응에 매우 취약해진다. 하지만 세균에게는 그들만의 은밀한 비법이 있다. 다른 세균들과 유전자를 마구 주고받는 ‘수평 유전자 전달’이다. 이 덕분에 이들은 엄청난 유전적 다양성을 얻을 수 있다. 지난 1억년 동안 대장균은 200번 이상의 이러한 소통을 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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