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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벌을 읽고....
작성자 초강초 등록일 09.03.07 조회수 122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책 죄와 벌을 읽기로 마음을 먹는 것은 꽤나 힘들었다. 이걸 언제 다 읽나 하는 생각에 앞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책장을 넘겨 가면서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로쟈)에게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누고, 그 중 한 부류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범죄의 행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국 앞으로의 성공을 위한 돈을 얻기 위해서 고리대금을 하는 노파를 죽이고 그 여동생까지도 우연히 죽이게 된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정신적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자수를 하는 것으로 그의 범죄는 끝을 맺는다.
언뜻 보면 미치광이 살인자 같은 이 사람에 대해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먼저, 그는 왜 사람을 죽였는가? 라는 질문이다. 그는 정말 앞날의 성공을 위해, 그래서 인류에 공헌하기 위해 살인을 했는가? 아니면 단지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살인을 했을까?
살인 직전까지 주인공의 정신은 자신이 세운 이론에 도취한 미치광이의 모습이다. 자기 스스로 살인을 정당화시키고 나서 살인을 수행하는 그는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나머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정신 상태를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가운데에서 그는 자신의 상황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적어도 금전적으로는) 범죄를 정당화하는 이론만을 머리에 담고 있다가 결국 범죄를 저질렀다.
두 번째로 그는 죄의식을 느꼈는지 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보고 있으면 그는 자수의 순간까지, 즉 경찰서 앞에서 소냐와 대화를 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은 이 한 마리를 죽였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엄청난 죄의식에 눌려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그 죄를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훔친 것을 손도 안 대고 바윗덩이 밑에 숨겨 놓고, 어머니와 동생이 어렵게 마련해 준 35루블의 돈을 단지 두 번 만났을 뿐인 알코올 중독자 마르멜라도프의 장례 비용으로 써 버리는 것이다. 처음의 목적은 이미 사라졌고 이제는 단지 자기는 돈이라는 천박한 목표에 사로잡혀 사람을 죽인 추악한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듯 그는 재물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그의 죄의식의 무게를 줄일 수 없었기에 그는 계속해서 방황한다. 열병에 시달리는 허약한 육체, 혼란한 정신, 자기를 둘러싼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그에게 죄의 고통을 주고 있었다. 그는 죄의 대가인 벌을 치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의 그의 모습은 황폐화된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참을 수 없는 죄의 고통을 느끼는 범죄자이다. 이 모습은 아마도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지 않을까. 무의식중에 수많은 죄악을 짓고 있는 우리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난 것 자체가 죄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자연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장본인은 바로 우리 인간이지 않은가. 생각할수록 힘들어지는 그 죄의식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죄의식과 유사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떻게 변해갔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춘을 하는 여인 소냐를 만난 이후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찾아가서 뜻 모를 소리를 늘어놓다가 화를 내기도 하고,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더구나 몇 번 만나지도 못한 그녀에게 자기의 범죄를 고백해 버린다. 그리고 나서는 그녀의 자수 권유를 받아들여 자수를 하고 8년간의 시베리아 유형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 길에 소냐가 동행한다.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바로 이 순간이 실제로는 그의 벌이 끝나는 순간이다. 남은 7년의 유형은 더 이상 벌이 아니다. 단지 새로운 생활을 위한 준비기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그는 죄의 무거운 짐을 벗고 새롭고 정상적인 하나의 인간으로 다시 탄생했다. 그렇다면 지금 많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죄의식의 무게도 어쩌면 스스로에게 채운 족쇄이지 않을까. 무거운 생각을 버리고 현실의 삶에 충실하며 모두에게 도움을 주려는 태도를 갖는다면 어둡기만 해 보이던 세상이 달라져 보이지 않을까.
한 인간의 정신적 파멸과 부활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죄와 벌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벌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죄의 뒷면인 것이다. 법에 의해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지은 마음에서 스스로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 바로 벌인 것이다. 이것은 죄지은 마음이 용서받기 이전에는 끊임없이 정신을 속박하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한 인간이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주변 사람들이 그를 용서했으며 최종적으로 새로운 정신을 가지고 자신을 용서해 죄의식을 떨쳐 버림으로써 정신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그 과정은 길고 힘든 것이며 자신의 변화를 필요로 했다. 현대인의 삶도, 나의 삶도 이런 것이 아닐까.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세상을 달라 보이게 하고 모두에가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현대인의 과제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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