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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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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이황)1
작성자 신혜인 등록일 17.11.16 조회수 49
 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형인 의경 세자가 원인 모를 병으로 급사하는 바람에 8살의 어린 나이에 세자의 자리에 올랐따. 그리고 11살에 한명회의 딸인 장순 왕후와 결혼해, 1년 만인 12살에 아들, 인성 대군을 얻었다. 세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왕위를 이을 아들을 낳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순 왕후는 산후병으로 죽고, 인성대군 역시 3살에 병을 얻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세조가 병환으로 죽은 뒤, 예종은 왕위를 잇게 됐지만, 당시 그의 나이 겨우 19살.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해, 섭정을 받게 되었다. 섭정을 맡은 이는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고, 영의정이 된 귀성군이었다. 귀성군은 예종의 사촌으로, 어렸을 때부터 세조의 총애를 받아왔다. 세조는 죽으면서도 예조의 왕권을 지켜주기 위해 가까운 친척인 귀성군에게 섭정을 맡기고, 믿었던 재상 한명회와 신숙주에게 예종을 보필하게 했다.
 왕위에 올랐지만, 세조 대부터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대신드르이 힘은 여전히 막강했다. 그래서 이들을 견제할 방법을 찾던 중, 세조의 묘호를 정하게 되었다. 신하들은 세조의 묘호를 '신종'으로 올렸다. '종'은 '나라를 잘 이끈 임금'에게 붙는 호칭이고, '조'는 '나라를 새로 세우거나, 새로 세웠다고 여길 만큼 큰 업적을 세운 임금'에게 붙는 호칭이다. 그러니 세조에게는 '종'을 붙이는게 합당했지만, 예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묘호에 '조'를 붙일 것을 명했다. 
 이후 세조는 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공신들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남이가 눈에 띄었다. 남이는 16살에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1등 공신에 책봉된 이후, 다음 해 병조판서가 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던 인물이었다. 이런 남이가 어느 날 혜성이 나타나자, '혜성은 묵은 것을 몰아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징조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세워야 한다'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에 유자광은 '남이가 역모를 꾸민다'고 예종에게 고해 왔고, 예종은 남이를 본보기로 처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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